목종은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났고 , 그래서 게이가 되었나?

하여간 천추태후가 몹쓸 인간이로세.

그런데

왜 이런 인간을 드라마 주인공으로 만들었을까?

역시나 티브이 드라마는 불륜을 좋아하나봐.




목종이 동성애자가 된 주요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18세의 어린 목종이 집권하자 왕권은 그의 모후 헌애왕후(채시라분) 차지가 된다. 유난히 정권욕이 강했던 헌애왕후는 김치양과 부부연을 맺고 그들의 소생으로 왕위를 이으려는 음모를 꾸미게 되고, 왕권을 상실한 목종은 도탄에 빠진 나머지 남색을 즐기며 정치를 외면한다."




아래는 고려왕조표입니다.

경종이 아들 없이 죽음으로써 그 이후 복잡해졌죠.

그 와중에 천추태후가 등장하는거죠.



고려초기에는 왕실에서 근친간의 결혼이 횡횡했다고 합니다.

사촌간의 결혼, 삼촌과 조카와의 연예 등등...  지금으로 보면 아주 몹쓸인간들이었죠.


대표적으로 천추태후의 여동생 황보설은 삼촌뻘인 안종(경주원군, 김호진분)과 관계하여 현종을 낳게 됩니다.







[천추태후]개령군(목종)은 왜 동성애자가 되었을까?   2009.05.31 유행간은 용모가 여자 같고 아름다웠으며 유충정은 남자다운 용모였으므로 목종은 유행간을 더 신임하였는데요. 이를...대량원군의 다급한 편지를 읽은 목종은 그의 명령으로 절에서 살고 있던 대량원군을 대궐로 불러들이는 한편, 서경... http://bakong.tistory.com   어떤오후의 어떤사전  







출처
http://www.imbc.com/broad/tv/drama/sindon/sindon/1469195_12685.html






근친결혼을 한 고려왕


광종            대목왕후 황보씨(태조+신정왕후 황보씨)
                  경화궁부인 임씨(혜종+의화왕후 임씨)
문원대왕       문혜왕후 유씨(태조+정덕왕후 유씨)
대종             선의왕후 유씨(태조+정덕왕후 유씨)

안종             경종비 헌정왕후 황보씨와 사통 = 현종 출산

경종             헌의왕후 유씨(문원대왕+문혜왕후 유씨)
                  헌애왕후 황보씨(대종+선의왕후)
                   헌정왕후 황보씨(대종+선의왕후)
                   대명궁부인(태조+정덕왕후 유씨 소생인 원장태자의 딸)
성종         문덕왕후 유씨(광종+대목왕후 황보씨)-원래 흥덕원군에게 출가했다가 성종에게 재가
               성종이 직계가 아니므로 대종의 아들이 아닌 광종의 사이로서 왕위를 잇게 편법 씀.
               문덕왕후 유씨는 흥덕원군과 1녀(목종 비 선정왕후 유씨)

목종         선정왕후 유씨(태조의 아들인 수명태자의 아들 흥덕원군과 문덕왕후 유씨 소생)
현종        원정왕후 김씨(성종+문화왕후 김씨)
              원화왕후 최씨(성종+연창궁부인 최씨)
              원용왕후 유씨(대종의 아들 경장태자의 딸)
덕종       경성왕후 김씨(현종+원순숙비 김씨)
             효사왕후 김씨(현종+원혜왕후 김씨)

문종       인평왕후 김씨(현종+원성왕후 김씨)





















사진자료 kbs






18세의 어린 목종이 집권하자 왕권은 그의 모후 헌애왕후(채시라분) 차지가 된다. 유난히 정권욕이 강했던 헌애왕후는 김치양과 부부연을 맺고 그들의 소생으로 왕위를 이으려는 음모를 꾸미게 되고, 왕권을 상실한 목종은 도탄에 빠진 나머지 남색을 즐기며 정치를 외면한다.


이에 따라 조정이 일부 친족과 권신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면서 고려는 점점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목종은 경종의 맏아들로 제3비 헌애왕후 황보씨 소생이며 이름은 송,자는 호신이다. 980년에 태어난 그는 경종이 사망할 당시 불과 두 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왕위는 성종에게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들이 없던 성종은 송을 궁중에서 양육하여 990년에 개령군에 봉했다. 그리고 송은 997년 병으로 누워 임종을 앞둔 성종의 내선으로 왕위에 오른다. 그가 곧 고려 제 7대 왕 목종이다.


목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빌미삼아 친모 헌애왕후가 섭정을 실시한다. 정권을 거머쥔 헌애왕후는 곧 자신의 정부 김치양을 불러들인다. 김치양은 성종대에 천추궁을 출입하면서 헌애왕후와 정을 통하다가 이일이 발가되어 장형을 당하고 귀양중에 있던 상태였다.


김치양을 불러들인 헌애왕후는 스스로를 천추태후라 부르도록 하고, 정사를 마음대로 주무른다. 또한 김치양과 버젓이 부부행세를 하며 간통을 하고 아이까지 출산하게 된다.


김치양은 등용된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우복야 겸 삼사사에 오르고, 인사권을 장악하여 백관의 임면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이렇게 되자 전국에서 벼슬을 원하는 자들이 뇌물을 가지고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으며, 그는 거둬들인 뇌물로 3백여간이나 되는 집을 짓고 정원에 정자와 연못을 꾸며 밤낮으로 헌애왕후와 놀아났다.


또한 김치양은 자신의 사당을 짓기 위해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날로 높아갔다.


이렇듯 왕권을 완전히 빼앗긴 목종은 절망한 나머지 정사를 소홀히 하고 엉뚱하게도 남색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의 동성연애 대상은 유행간이라는 인물이었다. 유행간은 용모가 남달리 아름다웠는데, 목종은 그의 용모에 반하여 남색을 즐기게 된다.


목종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유행간은 곧 합문사인의 벼슬에 오르게 되고, 항상 목종 곁에서 정사를 농단하기 시작한다. 목종은 정사에 관한 한 유행간에게 묻지 않는 것이 없었고, 이에 따라 유행간은 마음먹은 일이면 언제든지 왕을 조정하여 이룰 수 있었다.


왕을 마음대로 저정하게 된 유행간 역시 김치양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방자한 행동을 일삼았다. 심지어는 백관들을 경멸하여 그들에게 턱과 눈빛으로 지시를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되자 왕의 측근 신하들은 마치 유행간을 왕처럼 떠받들었다.


유행간은 힘이 강해지면서 유충정이라는 또 한명의 인물을 목종에게 소개해주었다. 발해 출신인 유충정 역시 외모가 미려하고 신체가 뛰어난 덕택으로 목종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조정은 점차 유행간과 유충정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출처
http://my.dreamwiz.com/khceng/history/hist005.htm




 


   고려시대(高麗, 918~1392, 473년간, 총 34대)


왕명

재위기간

약사

1

태조(太祖, 877~943)

918~943

이름은 왕건(王建). 신라 궁예의 부하로, 부하에게 옹립되어 송도에 도읍을 정하고 왕위에 오름. 935년 신라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함

2

혜종
(惠宗, ?~945)

943~945

휘는 무(武). 태조의 맏아들. 대광인 왕규(王規)의 음모에 신경쓰다 병사함.

3

정종(定宗, 923~949)

945~949

왕규의 난을 평정하고 불교를 숭상함. 서경(평양)에 왕성을 쌓고 천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

4

광종(光宗, 925~975)

949~975

휘는 소(昭). 자는 일화(日華). 노비 안검법을 제정하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를 실시함.

5

경종(景宗, 955~981)

975~981

휘는 주(인宙). 자는 장민(長民). 광종의 아들. 전시과를 제정함. 방탕한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

6

성종(成宗, 960~997)

981~997

휘는 치(治).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유교를 국가지도의 원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봉건제도를 확립함.

7

목종(穆宗, 980~1009)

997~1009

휘는 송(誦). 경종의 맏아들. 전시과를 고치고 학문을 장려 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강조(康兆)에게 피살됨.

8

현종(顯宗, 992~1031)

1009~1031

휘는 순(詢). 천추태후의 강요로 중이 되었다가 강조의 옹립으로 즉위함.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 하였으나, 강화하여 국내가 안정되고 문화가 발전함.

9

덕종(德宗, 1016~34)

1031~1034

휘는 흠(欽). 왕 2년에 천리장성을 쌓고, 국사편찬 사업도 완성함.

10

정종(靖宗, 1018~46)

1034~1046

휘는 형(亨).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고, 장자 상속과 적서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음.

11

문종(文宗, 1019~83)

1046~1083

휘는 휘(徽). 자는 촉유(燭幽). 많은 법류을 제정하여 내치의 기초를 닦음.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함.

12

순종(順宗, 1046~1083)

1083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해에 죽음.

13

선종(宣宗, 1049~1094)

1083~1094

휘는 운(運). 문종의 둘째 아들. 동생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국 송나라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오는등 고려문화의 융성기를 이룸.

14

헌종(獻宗, 1084~1097)

1094~1095

휘는 욱(昱). 즉위하자 이자의(李資義)의 난을 평정하고, 다음해에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

15

숙종(肅宗, 1054~1105)

1095~1105

문종의 셋째아들. 조카인 헌종을 폐위 시키고 즉위함.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화폐제도를 시작, 고려의 황금시대를 이룸.

16

예종(睿宗, 1079~1122)

1105~1122

휘는 우.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는 등 학문을 크게 진흥 시켰음.

17

인종(仁宗, 1109~1146)

1122~1146

휘는 해(偕).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을 격었으나 선정을 베품.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케 함.

18

의종(毅宗, 1124~1173)

1146~1170

휘는 현(晛). 인종의 맏아들. 무신을 천대하고 문신을 우대하다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나 폐위되고, 명종3년에 경주에서 살해됨.

19

명종(明宗, 1131~1202)

1170~1197

휘는 호(皓). 의종의 동생.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쫏겨남.

20

신종(神宗, 1144~1204)

1197~1204

휘는 탁(晫). 인종의 다섯째 아들로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

21

희종(熙宗, 1181~1237)

1204~1211

휘는 영. 신종의 맏아들. 최충헌을 없애려다 오히려 쫏겨남.

22

강종(康宗, 1152~1213)

1211~1213

휘는숙(璹), 정, 오. 명종의 맏아들. 명종과 함께 쫏겨났다가 최중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오름.

23

고종(高宗, 1192~1259)

1213~1259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뒤 28년동안 항쟁 하였으나 결국 굴복함. 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조판함.

24

원종(元宗, 1219~1274)

1259~1274

휘는 정(禎). 몽고에 굴욕을 당한 뒤 즉위. 임연(林衍)의 난, 삼별초의 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음.

25

충렬왕(忠烈, 1236~1308)

1274~1308

원(元)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등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을 받았음.

26

충선왕(忠宣, 1275~1325)

1308~1313

휘는 장(璋). 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으나 7개월만에 충렬왕이 다시 복위.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 고려와 원나라의 학문교류에 힘을 씀.

27

충숙왕(忠肅, 1294~1339)

1313~30, 32-39

휘는 도(燾). 정사에 염증을 느껴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다가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함.

28

충혜왕(忠惠, 1315~1344)

1330~32, 39-44

휘는 정(禎). 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음. 원나라로 귀양을 가다 병사함.

29

충목왕(忠穆, 1337~1348)

1344~1348

휘는 흔(昕).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함. 어머니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함.

30

충정왕(忠定, 1337~1352)

1348~1351

휘는 저. 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폐위됨.

31

공민왕(恭愍, 1330~74)

1351~1374

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 (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시해 당함.

32

우왕(禑, 1364~1389)

1374~1388

공민왕의 아들.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폐위됨.

33

창왕(昌, ?)

1388~1389

이성계 등이 우왕을 내쫏은후,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만에 강화도로 쫏겨나 10세때 시해됨.

34

공양왕(恭讓, 1345~1394)

1389~1392

휘는 요.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실권을 빼앗기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폐위 당하고 고려는 멸망함.





신고
Posted by 불암산 트랙백 0 : 댓글 0

배병수 최진실 엄정화

뭐..

능력있는 사람들

그러나??!!








[스크랩] 그때 그사건..`배병수 살해사건' 감춰진 진실은?  2008-10-15

...홍보용으로,, 그시절에는 매니저들이 연예인들 배반막으려고 섹스비디오를 이용해 먹었습니다.. 하용수도 매니저하면서 이정재를 따먹었단 소문도 돌았지요.. 백지영도 마찬가지 케이스예요.. 마치 회사사장이 돈관리하는...

blog.naver.com/krbsh 블로그명: "늘친구네 네이버둥지"5,140위









2008/10/16 - [분류 전체보기] - 배병수살해범 & 최진실 & 전용철................
2008/09/19 - [분류 전체보기] - 배병수살인사건 & 최진실 & 엄정화........
2008/09/10 - [분류 전체보기] - 배병수 물떠와 비디오....................




신고
Posted by 불암산 트랙백 0 : 댓글 0

1.궁중에서 궁녀끼리 몰래 부부로 짝 지어 동성연애

2.밴대질: 여자끼리 성교를 흉내내는 짓










네, 답변 드리겠습니다.

 

제가 오픈에 올렸던 내용으로 답글을 합니다.

 

 원래 대식(對食)이라는 용어는 궁녀들이 가끔 가족이나 친지를 궁궐 안으로 불러 들여 같이 밥을 먹게 해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휴가를 보내주지 않는 대신 가족이나 지인을 처소로 불러들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물론 여자에 한해서 입니다.

 

  그런데 이 대식을 핑계하여 동성연애할 대상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있었던 모양인데, 대개 상궁(尙宮)이 되면 아래로 방자(房子)와 비자(婢子)를 거느리며 독단적인  사생활을 하는데, 아마 이때부터 대식이 허용됐을 것입니다.

따라서 외부인을 끌어들여 대식을 하는 경우는 상궁들에 한정된다고 볼 수 있다. 나인(內人) 시절에는 방을 함께 쓰는 방동무가 있기 때문에 외부인을  끌여들여 재울 수 없는 까닭인데, 그런데 이 대식을 통해 동성연애가 이루어지자, 대식은 동성연애를 지칭하는 은어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이미 중국에서는 이 대식이란 제도를 통해 환관과 궁녀가 공공연히 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종 18년 10월 26일 당시 세자 향(珦, 5대 문종)의 두번째 세자빈인 봉씨 폐출 사건 은 궁녀들의 대식 행위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건이기도합니다. 봉빈을 폐출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비자 소쌍(召雙)과 자주 동침했다는 사실이었는데, 소쌍의 말에 따르면 봉빈은 '소쌍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남자와 교합하는 형상으로 서로 희롱했다'고 했다. 소쌍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봉빈이 강제로 시켰다는 것입니다. 비록 봉빈은 이를 강력하게 부정했지만, 세종은 소쌍의 말을 사실로 인정하고 봉빈을 내쫓기에 이릅니다.

 

    이 사건을 밝히는 과정에서 또 하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데, 봉빈과 동침했던 소쌍이 사비(私婢) 단지(端之)와 서로 좋아하는 관계였으며, 그들 또한 자주 동침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봉빈은 이들 두 사람의 관계를 질투하여 소쌍이 단지를 만나지 못하게 하기도 했는데, 봉빈은 소쌍과 단지의 성 행위를 목격했던 모양인데, 그것에 자극되어 소쌍과의 대식 행위를 행동으로 옮겼고, 그것은 대궐 안에서 소문으로 퍼져 세종의 귀에까지 들어 갔던 것입니다. 세종은 이 사실을 도승지 신인손과 동부승지 권채에게 말했지만, 봉빈을 폐출하는 이유에는 기재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세자빈이 여종과 대식 행위를 한 일이 너무나 추잡하여 차마 교지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결국 봉빈은 이 사건으로 폐출되었고, 오늘날에도 레즈비언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레즈비언이었는지는 불분명하며, 단지 남편 문종이 자신의 처소를 찾아 주기를 기다리며 기다리던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도통 자신의 침실을 찾아주지 않자, 남자를 그리워  하는 마음에 여종과 대식 행위를 즐겼던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레즈비언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남자 대신 여자와 관계한 대식(對食) 행위였는지 모릅니다. 봉빈 뿐만 아니라 대식 행위를 하던 대부분의 궁녀들은 남자와 동침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그렇게나마 성욕을 해결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대식은 오늘날의 레즈비언들의 행위와 구분되어야 할 것 같으며, 대식은 그야말로 성적으로 억압된 궁녀들의 한 맺힌 자구책으로 이해되는 것이 옳다는 뜻으로 보여집니다.


출처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1&eid=rvhlXyAIeftTqpUCsp+0tyV3yDf/DIsY&qb=tOu9xA==&pid=fnSF7doi5T8ssc8bfZ0sss--210474&sid=SPVlIyde9UgAAEg8Fw0



2008/09/18 - [분류 전체보기] - 쿨케이 & 괄약근 & 병역비리.......................

2008/09/03 - [분류 전체보기] - 천추태후이채영 & 여전사샤일라 & 리틀장진영.....................
2008/08/31 - [분류 전체보기] - 쿨 이재훈&성대현 그리고 동성애...........................
2008/08/04 - [분류 전체보기] - 린제이로한 동성결혼하다......
2008/07/30 - [분류 전체보기] - 김동욱 .....
2008/07/29 - [분류 전체보기] - 홍석천...............
2008/07/28 - [분류 전체보기] - 상주에 1조 쏟아진다............
2008/07/28 - [분류 전체보기] - 김치양............
2008/07/28 - [분류 전체보기] - 천추태후의 아들 목종 동성애자가 되다.....................
2008/07/19 - [분류 전체보기] - 쿨케이....
2008/07/18 - [분류 전체보기] - 김지호.....................
2008/07/02 - [분류 전체보기] - 폭시 다함 노출사고


신고
Posted by 불암산 트랙백 0 : 댓글 0

약물과다복용,,

할리우드 연예인들의 단골메뉴인 듯,,

심적고통과 육체적 진통을 함께 없애주는 약물을 과다 복용한 결과,,

잠자듯이 고통없이 사망했겠죠??

은연중 그런 죽음을 원하는 연예인이 있지 않을까요??!!









 





  '다크 나이트', '스파이더맨3' 제치고 美흥행 신기록   미디어다음     1분전

크리스토퍼놀란 감독과 크리스천 베일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다크 나이트’는 지난 1월 사망한 배우 히스레저의 유작으로...개봉 전부터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조커’ 역을 맡은 히스레저의 섬뜩한 악역 연기에 찬사가 쏟아졌다. 일부에서는...

세계일보 > 연예



  히스레저의 '다크 나이트', 美 박스오피스 흥행   미디어다음     1분전

[노컷뉴스방송연예팀 한상미 기자] 지난 1월에 사망한 할리우드 배우 고(故) 히스레저가 '조커' 역을 맡아 화제가 되고...배경으로 절대영웅 배트맨(크리스천 베일)과 영원한 숙적 조커(히스레저)의 운명을 건 대결을 그린 블록버스터. 배트맨...

노컷뉴스 > 연예 | 한상미기자









03[뉴스] `브로크백 마운틴` 히스 레저 사망원인은 `약물 과다복용`...2008.02.07

 

...에 출연한 히스 레저 ``브로크백 마운틴``의 영화배우 히스 레저 의 사망원인이 약물 과다복용인 것으로 드러났다...복용으로 밝혀졌지만 어떤 종류의 약 성분이 히스 레저 의 사망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는...


 

신고
Posted by 불암산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