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08. 9. 3. 22:37

몸을 잘 간수하지 않는 여자를 말하는 '화냥년'의 유래가 환향녀(還鄕女)인데

고려 때 몽고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라는 설과

정묘,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라는 설이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고향에 돌아온 여자라는 의미보다 강제로 오랑캐에 의해 몸을 더럽힌

여자라는 뉘앙스가 강해서 곧장 욕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전쟁통에 욕을 당한 부녀자가 소수인 경우라면 주위에서 자결하라고 압박하기도 하고

동네에서 왕따가 되어 온전히 살지 못하게 되지만 그 수가 많으면 문제가

되지요. 임진왜란 때 욕을 당한 여자들의 정조를 문제삼지 말라는 당시 선조 임금의

하교가 있었고, 병자호란 뒤에 청나라에서 돌아온 여자들도 남편이 이혼하지 말고

거두고 살아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인조 16년(1638) 3월 실록에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아들의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신풍부원군 장유의 상소와,

사위놈의 이혼 요구에 통분해 하는 전 승지 한이겸의 상소가 맞부딛혔는데

좌의정 최명길이 강력히 주장합니다. 이혼을 허락해서는 안된다구요.

인조 임금은 최명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만 양반가에서는 이러한 임금의 전교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환향한 아내와 며느리를 내칩니다.


당시 실록을 집필한 사관은 최명길의 주장에 대해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

사대부가의 여자가 어찌 몸을 더럽히고 살기를 바라느냐고 쓰고 있습니다.

환향녀가 왜 화냥년이란 욕으로 변질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때의 양반들과 사관이라는 자가 다들 개새끼라 생각합니다.

자기 여자를 지켜주지 못한 남자는 사내 구실을 한다고 할 수 없는데

역사상 한번도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여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갖다 내바치면서 일신의 안위만 생각했던 이 땅의 남자들이 주제넘게스리

무슨 여자의 정조를 논한단 말입니까?


-다음펌글-

전용홀더채택으로 귀차니스트에게딱~~~!!  이런 책갈피 봤어??

posted by 공릉역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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