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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8.10 최민호 이효리...........

루드비히 파이셔 떴을까?

8월 9일 남자 유도 60kg급 결승전에서 한국 선수 최민호에게 들어메치기 한판패를 당했던 오스트리아 선수 루드비히 파이셔가 화제. 파이셔는 경기의 패배로 인한 실망 대신 매트에 꿇어앉아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최민호를 일으켜 포옹하며 금메달을 축하해주는 스포츠맨십을 발휘함.   자세히보기





'루드비히 파이셔' 최신뉴스
'세계1위' 루드비히 파이셔, 훈남 등극…"은메달도 즐거워" 눈길     스포츠서울 | 2008.08.09 22:43






인물정보







루드비히 파이셔(오스트리아)





 이장면으로 우리에겐 훈남이미지로 각인된 루드비히 파이셔 (Ludwig Paischer) 여러사진들



루드비히 파이셔 (Ludwig Paischer) 는 사실 직업군인이라고 한다
 
 
 

 홈피 http://paisch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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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암산 트랙백 0 : 댓글 0
이효리, 3주째 네티즌 송 수상   미디어다음     10분전

[관련기사]☞이효리 "'텐미닛' 신청한 최민호 선수에게 감사"☞이효리의 성공을 이끈 3인방은 누구?☞이효리 '유-고-걸' 뮤직뱅크서 2주 연속 1위☞이효리 '태안 도울 수 있다면….' 섹시 입술 공개☞이효리 "언론, 안티로 힘들었던 적 많아..















〈스포츠칸〉이효리 "최민호 선수 짱고마워요"
  미디어다음     10분전

평소 이효리 팬이었던 최민호 선수는 경기 전 올림픽 주최 측에 이효리의 '텐미닛'을 신청했고, 한판승으로 금메달 확정된 후 경기장 내에 '텐미닛'이 울려퍼졌다. '텐미닛'은 최민호 선수 덕분에 중국전역 및 세계에 고스란히 전해졌다.한편...











박태환ㆍ최민호 金 현장에 소녀시대ㆍ이효리 축가
  미디어다음     28분전

이효리의 소속사인 엠넷미디어 역시 "이효리최민호 선수에게 무척 감사하고 있다"며 "금메달을 따내 자랑스럽고 축하한다고도 했다. 이효리는 스케줄 때문에 경기를 TV로 보지 못하고 '텐 미닛츠'가 시상식 전 흘러나왔다는 이야기를...













[베이징] 한국여자양궁대표팀, 세계신기록행진 금메달 당연!
    39분전

이날 베이징올림픽경기장에 소녀시대의 ‘소녀시대’와 전날 최민호 경기뒤에는 이효리의 '텐미닛(10 minutes)'이 울려퍼졌다. '소녀시대'와 '텐미닛'은 각각 박태환 선수와 최민호 선수의 애창곡으로, 이번 올림픽에서는 1위를 차지한 선수가...







이효리의 성공을 이끈 3인방은 누구?

기사입력 2008-08-09 14:53 강승훈 tarophine@asiaeconomy.co.kr


[아시아경제신문 강승훈 기자]이효리가 3집 앨범을 발표하고 컴백했다. 컴백 전부터 여러 논란에 휩싸여온 이효리는 온·오프라인에서 1위를 지키며 '역시 이효리'라는 찬사를 얻었다.

매 앨범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이효리는 3집 앨범을 만들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3집과 연관이 있는 이효리의 사람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이효리와 손호영은 뗄레야 뗄수가 없다. 음악적인 친구로 지내는 손호영은 이번 이효리의 포스터 촬영에서 신발을 빌려준 장본인.

이효리는 "모자와 신발을 (손)호영이한테 빌렸다. 컨셉트에 맞는 액세서리를 찾다가 못찾아서 하와이로 가기전에 호영이한테 달라고 했다. 신발은 큐빅이 박힌 건데 색다르고 멋지다"고 말했다.

이효리는 핑클시절 라이벌이었던 god와 친하게 지냈다. 옥주현이 손호영과 친분을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핑클 멤버들과 친해졌고,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또 다른 인물로는 스타일리스트 정보윤씨다. 이효리는 정보윤씨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효리가 활동할 때 입는 의상이나 스타일은 모두 정보윤씨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이효리는 "연예계 생활을 10년 하면서 동료도 소중하고, 소속사 매니저들도 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 중에서도 정말 좋은 사람이 친구이자 좋은 언니는 정보윤이다"며 "(정)보윤 언니 없이는 못 살정도로 저한테는 소중한 사람이다. 10년동안 함께 일해왔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이번 타이틀 곡을 만든 이 트라이브도 포함된다. 이 트라이브는 한명현, 김영득 등 두명으로 구성된 팀으로 '유고걸'를 만들어 화제가 됐다.

당초 이효리는 앨범의 막바지 작업에서 타이틀 곡 선정에 난항을 겪었다. 이효리가 원하는 타이틀 곡이 계속 나오지 않았기 때문. 외부 작곡가들에게도 타이틀 곡을 의뢰했지만, 이효리 스스로 마음에 드는 곡은 나오지 않았다.

이효리는 문득 예전에 받았다가 사용하지 않았던 곡들을 차례대로 들어보기로 했다. 컨셉트에 맞지 않거나, 자신이 소화하기에 맞지 않은 곡들을 앨범에 싣지 않고 따로 보관해뒀던 곡인데 이효리는 '유고걸'을 듣고 살짝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유고걸'이 앨범 타이틀에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트라이브도 '유고걸'이라는 곡이 사장될 수 있었지만 이효리가 감각적으로 불러줘서 고맙다고 만족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효리는 오프라인 앨범 판매량이 4만장에 육박했고, '유고걸', '천하무적 이효리' 등이 멜론, 엠넷닷컴 등 주요 온라인 음악사이트에서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강승훈 기자 tarophine@asiaeconomy.co.kr







‘첫 金’ 최민호 어머니 눈물 `먹지도 못하고 살만 빼더니…` [JES]


최민호(28·한국마사회)가 눈물을 흘리며 시상대에 섰을 때 그 보다 더 가슴을 치며 눈물을 삼킨 이가 있었다.

최민호의 어머니 최정분(58)씨는 "한창 클 때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 살만 뺐다. 키 크는 주사라도 맞히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부모로서 제일 후회되는 일"이라며 아들의 작은 키(163cm)가 제대로 먹이지 못한 부모때문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180cm가 넘는 남동생 현호(26)를 보노라면 더욱 부모의 마음은 아프다.

최민호의 키는 중학교 때 이후 더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골격과 근육은 어른이 되면서 커져만 갔다. 이로인해 그는 매경기 10㎏에 이르는 극심한 감량의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수십번 '지옥'을 갔다오면서도 최민호는 끝내 체급을 올리지 않았다. 성적을 올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본인이 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최민호는 국내 대회에서도 부모님을 경기장에 오지 못 하도록 말린다. 가족이 있으면 평정심을 잃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그런 최민호도 연간 6~7회 전국대회 중 절반은 애타게 어머니를 찾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체중이 빠지지 않을 때 옆에서 지켜주기를 바라는 때문이다. 그래서 최정분씨는 계체가 있기 전날 밤 비상대기를 하곤한다. 대회숙소인 여관에서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최민호를 발견한 여관 직원이 놀라 집으로 연락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최민호의 눈물에는 어려운 집안사정도 녹아있다. 경북 김천에서 아이스크림 대리점을 하는 아버지(최수원·56) 덕줌에 어린 시절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경북 경산 진량고교) 1학년 때 아버지가 3억 5000여 만원을 떼이면서 갑작스레 가세가 기울었다. 살던 집과 대리점을 넘겨준 가장은 방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아들이 다니는 유도팀 감독의 권유를 받아들여 진량고 유도팀 주무일을 맡으면서 중심을 잡았다. 유도팀의 미니버스를 운전하는 등 아들과 그의 동료를 뒷바라했다. 그리고 매일 밤 10시 유도부원들이 취침에 들어가면 부자는 까치발을 하고 숙소를 나와 훈련을 했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최민호는 아버지를 옆에 세워놓고 밤 12시까지 철봉에 매달아놓은 고무튜브를 당겼다. "아들이 그토록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어영부영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아버지는 주무생활 1년만에 생업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최민호는 중학교 때 팀 동료들이 밤 10시면 귀가하는 통에 야간훈련 상대를 구하지 못 했다. 하는 수 없이 아버지를 밤늦게까지 업어치며 기술을 익혔다. 그런 훈련독종이었지만 최민호에게 상복은 없었다. 크고 작은 대회 때마다 동메달에 그쳐 별명이 '동메달 그랜드슬래머'였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 2004 아테네올림픽, 2007 리우세계선수권 등 메이저대회는 물론 국내대회에서도 유난히 3등과 인연이 많았다.

최민호는 시상식이 끝난뒤 "매일 울 정도로 힘든 훈련이었지만 운동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면서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제 한 체급을 올릴 최민호는 지독한 3등 징크스도, 지옥같은 감량인생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함께 작별을 했다.

베이징=장치혁 기자 [jangta@joongang.co.kr]
대구=황선윤 기자






이효리 감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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