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종은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났고 , 그래서 게이가 되었나?

하여간 천추태후가 몹쓸 인간이로세.

그런데

왜 이런 인간을 드라마 주인공으로 만들었을까?

역시나 티브이 드라마는 불륜을 좋아하나봐.




목종이 동성애자가 된 주요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18세의 어린 목종이 집권하자 왕권은 그의 모후 헌애왕후(채시라분) 차지가 된다. 유난히 정권욕이 강했던 헌애왕후는 김치양과 부부연을 맺고 그들의 소생으로 왕위를 이으려는 음모를 꾸미게 되고, 왕권을 상실한 목종은 도탄에 빠진 나머지 남색을 즐기며 정치를 외면한다."




아래는 고려왕조표입니다.

경종이 아들 없이 죽음으로써 그 이후 복잡해졌죠.

그 와중에 천추태후가 등장하는거죠.



고려초기에는 왕실에서 근친간의 결혼이 횡횡했다고 합니다.

사촌간의 결혼, 삼촌과 조카와의 연예 등등...  지금으로 보면 아주 몹쓸인간들이었죠.


대표적으로 천추태후의 여동생 황보설은 삼촌뻘인 안종(경주원군, 김호진분)과 관계하여 현종을 낳게 됩니다.







[천추태후]개령군(목종)은 왜 동성애자가 되었을까?   2009.05.31 유행간은 용모가 여자 같고 아름다웠으며 유충정은 남자다운 용모였으므로 목종은 유행간을 더 신임하였는데요. 이를...대량원군의 다급한 편지를 읽은 목종은 그의 명령으로 절에서 살고 있던 대량원군을 대궐로 불러들이는 한편, 서경... http://bakong.tistory.com   어떤오후의 어떤사전  







출처
http://www.imbc.com/broad/tv/drama/sindon/sindon/1469195_12685.html






근친결혼을 한 고려왕


광종            대목왕후 황보씨(태조+신정왕후 황보씨)
                  경화궁부인 임씨(혜종+의화왕후 임씨)
문원대왕       문혜왕후 유씨(태조+정덕왕후 유씨)
대종             선의왕후 유씨(태조+정덕왕후 유씨)

안종             경종비 헌정왕후 황보씨와 사통 = 현종 출산

경종             헌의왕후 유씨(문원대왕+문혜왕후 유씨)
                  헌애왕후 황보씨(대종+선의왕후)
                   헌정왕후 황보씨(대종+선의왕후)
                   대명궁부인(태조+정덕왕후 유씨 소생인 원장태자의 딸)
성종         문덕왕후 유씨(광종+대목왕후 황보씨)-원래 흥덕원군에게 출가했다가 성종에게 재가
               성종이 직계가 아니므로 대종의 아들이 아닌 광종의 사이로서 왕위를 잇게 편법 씀.
               문덕왕후 유씨는 흥덕원군과 1녀(목종 비 선정왕후 유씨)

목종         선정왕후 유씨(태조의 아들인 수명태자의 아들 흥덕원군과 문덕왕후 유씨 소생)
현종        원정왕후 김씨(성종+문화왕후 김씨)
              원화왕후 최씨(성종+연창궁부인 최씨)
              원용왕후 유씨(대종의 아들 경장태자의 딸)
덕종       경성왕후 김씨(현종+원순숙비 김씨)
             효사왕후 김씨(현종+원혜왕후 김씨)

문종       인평왕후 김씨(현종+원성왕후 김씨)





















사진자료 kbs






18세의 어린 목종이 집권하자 왕권은 그의 모후 헌애왕후(채시라분) 차지가 된다. 유난히 정권욕이 강했던 헌애왕후는 김치양과 부부연을 맺고 그들의 소생으로 왕위를 이으려는 음모를 꾸미게 되고, 왕권을 상실한 목종은 도탄에 빠진 나머지 남색을 즐기며 정치를 외면한다.


이에 따라 조정이 일부 친족과 권신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면서 고려는 점점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목종은 경종의 맏아들로 제3비 헌애왕후 황보씨 소생이며 이름은 송,자는 호신이다. 980년에 태어난 그는 경종이 사망할 당시 불과 두 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왕위는 성종에게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들이 없던 성종은 송을 궁중에서 양육하여 990년에 개령군에 봉했다. 그리고 송은 997년 병으로 누워 임종을 앞둔 성종의 내선으로 왕위에 오른다. 그가 곧 고려 제 7대 왕 목종이다.


목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빌미삼아 친모 헌애왕후가 섭정을 실시한다. 정권을 거머쥔 헌애왕후는 곧 자신의 정부 김치양을 불러들인다. 김치양은 성종대에 천추궁을 출입하면서 헌애왕후와 정을 통하다가 이일이 발가되어 장형을 당하고 귀양중에 있던 상태였다.


김치양을 불러들인 헌애왕후는 스스로를 천추태후라 부르도록 하고, 정사를 마음대로 주무른다. 또한 김치양과 버젓이 부부행세를 하며 간통을 하고 아이까지 출산하게 된다.


김치양은 등용된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우복야 겸 삼사사에 오르고, 인사권을 장악하여 백관의 임면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이렇게 되자 전국에서 벼슬을 원하는 자들이 뇌물을 가지고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으며, 그는 거둬들인 뇌물로 3백여간이나 되는 집을 짓고 정원에 정자와 연못을 꾸며 밤낮으로 헌애왕후와 놀아났다.


또한 김치양은 자신의 사당을 짓기 위해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날로 높아갔다.


이렇듯 왕권을 완전히 빼앗긴 목종은 절망한 나머지 정사를 소홀히 하고 엉뚱하게도 남색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의 동성연애 대상은 유행간이라는 인물이었다. 유행간은 용모가 남달리 아름다웠는데, 목종은 그의 용모에 반하여 남색을 즐기게 된다.


목종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유행간은 곧 합문사인의 벼슬에 오르게 되고, 항상 목종 곁에서 정사를 농단하기 시작한다. 목종은 정사에 관한 한 유행간에게 묻지 않는 것이 없었고, 이에 따라 유행간은 마음먹은 일이면 언제든지 왕을 조정하여 이룰 수 있었다.


왕을 마음대로 저정하게 된 유행간 역시 김치양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방자한 행동을 일삼았다. 심지어는 백관들을 경멸하여 그들에게 턱과 눈빛으로 지시를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되자 왕의 측근 신하들은 마치 유행간을 왕처럼 떠받들었다.


유행간은 힘이 강해지면서 유충정이라는 또 한명의 인물을 목종에게 소개해주었다. 발해 출신인 유충정 역시 외모가 미려하고 신체가 뛰어난 덕택으로 목종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조정은 점차 유행간과 유충정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출처
http://my.dreamwiz.com/khceng/history/hist005.htm




 


   고려시대(高麗, 918~1392, 473년간, 총 34대)


왕명

재위기간

약사

1

태조(太祖, 877~943)

918~943

이름은 왕건(王建). 신라 궁예의 부하로, 부하에게 옹립되어 송도에 도읍을 정하고 왕위에 오름. 935년 신라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함

2

혜종
(惠宗, ?~945)

943~945

휘는 무(武). 태조의 맏아들. 대광인 왕규(王規)의 음모에 신경쓰다 병사함.

3

정종(定宗, 923~949)

945~949

왕규의 난을 평정하고 불교를 숭상함. 서경(평양)에 왕성을 쌓고 천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

4

광종(光宗, 925~975)

949~975

휘는 소(昭). 자는 일화(日華). 노비 안검법을 제정하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를 실시함.

5

경종(景宗, 955~981)

975~981

휘는 주(인宙). 자는 장민(長民). 광종의 아들. 전시과를 제정함. 방탕한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

6

성종(成宗, 960~997)

981~997

휘는 치(治).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유교를 국가지도의 원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봉건제도를 확립함.

7

목종(穆宗, 980~1009)

997~1009

휘는 송(誦). 경종의 맏아들. 전시과를 고치고 학문을 장려 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강조(康兆)에게 피살됨.

8

현종(顯宗, 992~1031)

1009~1031

휘는 순(詢). 천추태후의 강요로 중이 되었다가 강조의 옹립으로 즉위함.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 하였으나, 강화하여 국내가 안정되고 문화가 발전함.

9

덕종(德宗, 1016~34)

1031~1034

휘는 흠(欽). 왕 2년에 천리장성을 쌓고, 국사편찬 사업도 완성함.

10

정종(靖宗, 1018~46)

1034~1046

휘는 형(亨).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고, 장자 상속과 적서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음.

11

문종(文宗, 1019~83)

1046~1083

휘는 휘(徽). 자는 촉유(燭幽). 많은 법류을 제정하여 내치의 기초를 닦음.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함.

12

순종(順宗, 1046~1083)

1083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해에 죽음.

13

선종(宣宗, 1049~1094)

1083~1094

휘는 운(運). 문종의 둘째 아들. 동생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국 송나라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오는등 고려문화의 융성기를 이룸.

14

헌종(獻宗, 1084~1097)

1094~1095

휘는 욱(昱). 즉위하자 이자의(李資義)의 난을 평정하고, 다음해에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

15

숙종(肅宗, 1054~1105)

1095~1105

문종의 셋째아들. 조카인 헌종을 폐위 시키고 즉위함.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화폐제도를 시작, 고려의 황금시대를 이룸.

16

예종(睿宗, 1079~1122)

1105~1122

휘는 우.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는 등 학문을 크게 진흥 시켰음.

17

인종(仁宗, 1109~1146)

1122~1146

휘는 해(偕).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을 격었으나 선정을 베품.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케 함.

18

의종(毅宗, 1124~1173)

1146~1170

휘는 현(晛). 인종의 맏아들. 무신을 천대하고 문신을 우대하다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나 폐위되고, 명종3년에 경주에서 살해됨.

19

명종(明宗, 1131~1202)

1170~1197

휘는 호(皓). 의종의 동생.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쫏겨남.

20

신종(神宗, 1144~1204)

1197~1204

휘는 탁(晫). 인종의 다섯째 아들로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

21

희종(熙宗, 1181~1237)

1204~1211

휘는 영. 신종의 맏아들. 최충헌을 없애려다 오히려 쫏겨남.

22

강종(康宗, 1152~1213)

1211~1213

휘는숙(璹), 정, 오. 명종의 맏아들. 명종과 함께 쫏겨났다가 최중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오름.

23

고종(高宗, 1192~1259)

1213~1259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뒤 28년동안 항쟁 하였으나 결국 굴복함. 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조판함.

24

원종(元宗, 1219~1274)

1259~1274

휘는 정(禎). 몽고에 굴욕을 당한 뒤 즉위. 임연(林衍)의 난, 삼별초의 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음.

25

충렬왕(忠烈, 1236~1308)

1274~1308

원(元)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등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을 받았음.

26

충선왕(忠宣, 1275~1325)

1308~1313

휘는 장(璋). 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으나 7개월만에 충렬왕이 다시 복위.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 고려와 원나라의 학문교류에 힘을 씀.

27

충숙왕(忠肅, 1294~1339)

1313~30, 32-39

휘는 도(燾). 정사에 염증을 느껴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다가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함.

28

충혜왕(忠惠, 1315~1344)

1330~32, 39-44

휘는 정(禎). 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음. 원나라로 귀양을 가다 병사함.

29

충목왕(忠穆, 1337~1348)

1344~1348

휘는 흔(昕).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함. 어머니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함.

30

충정왕(忠定, 1337~1352)

1348~1351

휘는 저. 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폐위됨.

31

공민왕(恭愍, 1330~74)

1351~1374

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 (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시해 당함.

32

우왕(禑, 1364~1389)

1374~1388

공민왕의 아들.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폐위됨.

33

창왕(昌, ?)

1388~1389

이성계 등이 우왕을 내쫏은후,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만에 강화도로 쫏겨나 10세때 시해됨.

34

공양왕(恭讓, 1345~1394)

1389~1392

휘는 요.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실권을 빼앗기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폐위 당하고 고려는 멸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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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현종의 어머니가 황보 설(헌정왕후)이다. 천추태후는 황보설의 언니이며 이름은 황보 수이다.
황보가 성이며 외가의 성을 따랐다고 한다..

연예인 황보와 헤갈리기 쉽다.....ㅎㅎ


아래 글들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추태후를 드라마와 다르게 보고 있군요.

단순히 여걸이 아닌 남자와 바람 핀 여인쯤으로...


그건 그렇고 김석훈은 영 사극에는 안 어울려보이는데요.



아래 표처럼 경종이 아들이 없어서 그 때부터 대물림이 복잡해졌군요.




천추태후 드라마 보면 ,, 정말 고려때는 근친간의 결혼이 심했군요

경종이 천추태후를 비로 삼는데, 둘은 아버지끼리 형제입니다.   즉 경종의 아버지가 광종이고, 천추대후의 아버지가 대종이니까,...  경종과 천추태후는 사촌지간입니다.


천추태후의 여동생은 삼촌인 안종과 관계하여 현종을 낳게 됩니다.


완전히 지금으로 보면 콩가루 집안인 셈이죠.




아래에서 천추태후(채시라,헌애왕후)는 경종의 비이며, 성종의 여동생이다...목종의 어머니이다

황보설(신애, 헌정왕후)는 경종의 비이며, 성종과 천추태후의 여동생이다..현종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황주는? 
현재 황해도 황주군 가운데에 있는 읍. 군청 소재지입니다. 천추태후를 보셨으면 아셨을 듯, 황주출신의 황보씨는 대표적인 북방의 가문입니다. 황해도라는 도 이름에서 황자는 황주의 황자를 의미합니다. 마치 전라도가 전주와 나주의 결합으로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드라마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아래를 클릭하세요.

더보기




천추태후의 역사왜곡에 대한 부분은 여기서 보세요    http://bakong.tistory.com/177




   출처
   http://www.imbc.com/broad/tv/drama/sindon/sindon/1469195_12685.html







천추태후(2008년 10월 방송예정) 
KBS 2TV | 신창석 연출, 손영목 극본
고려시대 경종의 세번째 황후 천추태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더보기
출연 : 채시라, 최재성, 이덕화, 김석훈, 김호진, 신애  






고려역대왕

태조혜종정종광종경종성종목종현종덕종정종문종순종선종헌종숙종예종인종의종명종신종희종강종고종원종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충목왕충정왕공민왕우왕창왕공양왕






천추태후는 태조왕건의 손녀딸로 대 고려라는 큰 이상을 품고 강감찬 장군(이덕화 분)과 더불어 거란의 침략에 맞서 싸워 무려 세 차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여걸이자, 대립과 정쟁의 고려 초기를 진취적으로 돌파한 여성 태후이다.



 천추태후는

964(광종 15)∼1029(현종 20). 고려 제5대 경종의 비. 종실 대종(戴宗, 추존호)의 딸이며, 목종의 어머니이다. 뒤에 경종의 비가 된 헌정왕후(獻貞王后)의 언니로 성은 외가를 따라 황보(皇甫)로 하였다.

경종이 죽은 뒤 김치양(金致陽)과의 추문이 알려져 김치양은 성종에 의해 유배되었으며, 997년 성종이 죽은 뒤에 아들인 목종이 18세로 즉위하자 섭정을 하였다. 그리하여 외척의 발호와 왕권의 쇠미를 초래하게 되었다.

즉 유배되어 있던 김치양을 불러 우복야겸삼사사(右僕射兼三司使)로 삼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고 하였다. 그러나 목종이 후사를 헌정왕후의 소생인 대량원군 순(大良院君詢 : 뒤의 顯宗)으로 정하자 김치양으로 하여금 궁궐에 불을 지르게 하는 등 반역을 꾀하였다.

결국 이 난은 서북면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로 있던 강조(康兆)에 의해 평정되어, 목종이 폐위되고 현종이 즉위하였다. 이 난의 실패로 헌애왕후(천추태후)는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황주(黃州)로 옮겨졌다.

≪참고문헌≫ 高麗史
≪참고문헌≫ 高麗史節要







    고려시대(高麗, 918~1392, 473년간, 총 34대)


왕명

재위기간

약사

1

태조(太祖, 877~943)

918~943

이름은 왕건(王建). 신라 궁예의 부하로, 부하에게 옹립되어 송도에 도읍을 정하고 왕위에 오름. 935년 신라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함

2

혜종
(惠宗, ?~945)

943~945

휘는 무(武). 태조의 맏아들. 대광인 왕규(王規)의 음모에 신경쓰다 병사함.

3

정종(定宗, 923~949)

945~949

왕규의 난을 평정하고 불교를 숭상함. 서경(평양)에 왕성을 쌓고 천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

4

광종(光宗, 925~975)

949~975

휘는 소(昭). 자는 일화(日華). 노비 안검법을 제정하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를 실시함.

5

경종(景宗, 955~981)

975~981

휘는 주(인宙). 자는 장민(長民). 광종의 아들. 전시과를 제정함. 방탕한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

6

성종(成宗, 960~997)

981~997

휘는 치(治).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유교를 국가지도의 원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봉건제도를 확립함.

7

목종(穆宗, 980~1009)

997~1009

휘는 송(誦). 경종의 맏아들. 전시과를 고치고 학문을 장려 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강조(康兆)에게 피살됨.

8

현종(顯宗, 992~1031)

1009~1031

휘는 순(詢). 천추태후의 강요로 중이 되었다가 강조의 옹립으로 즉위함.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 하였으나, 강화하여 국내가 안정되고 문화가 발전함.

9

덕종(德宗, 1016~34)

1031~1034

휘는 흠(欽). 왕 2년에 천리장성을 쌓고, 국사편찬 사업도 완성함.

10

정종(靖宗, 1018~46)

1034~1046

휘는 형(亨).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고, 장자 상속과 적서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음.

11

문종(文宗, 1019~83)

1046~1083

휘는 휘(徽). 자는 촉유(燭幽). 많은 법류을 제정하여 내치의 기초를 닦음.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함.

12

순종(順宗, 1046~1083)

1083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해에 죽음.

13

선종(宣宗, 1049~1094)

1083~1094

휘는 운(運). 문종의 둘째 아들. 동생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국 송나라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오는등 고려문화의 융성기를 이룸.

14

헌종(獻宗, 1084~1097)

1094~1095

휘는 욱(昱). 즉위하자 이자의(李資義)의 난을 평정하고, 다음해에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

15

숙종(肅宗, 1054~1105)

1095~1105

문종의 셋째아들. 조카인 헌종을 폐위 시키고 즉위함.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화폐제도를 시작, 고려의 황금시대를 이룸.

16

예종(睿宗, 1079~1122)

1105~1122

휘는 우.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는 등 학문을 크게 진흥 시켰음.

17

인종(仁宗, 1109~1146)

1122~1146

휘는 해(偕).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을 격었으나 선정을 베품.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케 함.

18

의종(毅宗, 1124~1173)

1146~1170

휘는 현(晛). 인종의 맏아들. 무신을 천대하고 문신을 우대하다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나 폐위되고, 명종3년에 경주에서 살해됨.

19

명종(明宗, 1131~1202)

1170~1197

휘는 호(皓). 의종의 동생.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쫏겨남.

20

신종(神宗, 1144~1204)

1197~1204

휘는 탁(晫). 인종의 다섯째 아들로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

21

희종(熙宗, 1181~1237)

1204~1211

휘는 영. 신종의 맏아들. 최충헌을 없애려다 오히려 쫏겨남.

22

강종(康宗, 1152~1213)

1211~1213

휘는숙(璹), 정, 오. 명종의 맏아들. 명종과 함께 쫏겨났다가 최중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오름.

23

고종(高宗, 1192~1259)

1213~1259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뒤 28년동안 항쟁 하였으나 결국 굴복함. 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조판함.

24

원종(元宗, 1219~1274)

1259~1274

휘는 정(禎). 몽고에 굴욕을 당한 뒤 즉위. 임연(林衍)의 난, 삼별초의 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음.

25

충렬왕(忠烈, 1236~1308)

1274~1308

원(元)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등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을 받았음.

26

충선왕(忠宣, 1275~1325)

1308~1313

휘는 장(璋). 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으나 7개월만에 충렬왕이 다시 복위.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 고려와 원나라의 학문교류에 힘을 씀.

27

충숙왕(忠肅, 1294~1339)

1313~30, 32-39

휘는 도(燾). 정사에 염증을 느껴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다가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함.

28

충혜왕(忠惠, 1315~1344)

1330~32, 39-44

휘는 정(禎). 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음. 원나라로 귀양을 가다 병사함.

29

충목왕(忠穆, 1337~1348)

1344~1348

휘는 흔(昕).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함. 어머니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함.

30

충정왕(忠定, 1337~1352)

1348~1351

휘는 저. 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폐위됨.

31

공민왕(恭愍, 1330~74)

1351~1374

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 (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시해 당함.

32

우왕(禑, 1364~1389)

1374~1388

공민왕의 아들.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폐위됨.

33

창왕(昌, ?)

1388~1389

이성계 등이 우왕을 내쫏은후,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만에 강화도로 쫏겨나 10세때 시해됨.

34

공양왕(恭讓, 1345~1394)

1389~1392

휘는 요.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실권을 빼앗기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폐위 당하고 고려는 멸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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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高麗, 918~1392, 473년간, 총 34대)



왕명

재위기간

약사

1

태조(太祖, 877~943)

918~943

이름은 왕건(王建). 신라 궁예의 부하로, 부하에게 옹립되어 송도에 도읍을 정하고 왕위에 오름. 935년 신라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함

2

혜종
(惠宗, ?~945)

943~945

휘는 무(武). 태조의 맏아들. 대광인 왕규(王規)의 음모에 신경쓰다 병사함.

3

정종(定宗, 923~949)

945~949

왕규의 난을 평정하고 불교를 숭상함. 서경(평양)에 왕성을 쌓고 천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

4

광종(光宗, 925~975)

949~975

휘는 소(昭). 자는 일화(日華). 노비 안검법을 제정하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를 실시함.

5

경종(景宗, 955~981)

975~981

휘는 주(인宙). 자는 장민(長民). 광종의 아들. 전시과를 제정함. 방탕한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

6

성종(成宗, 960~997)

981~997

휘는 치(治).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유교를 국가지도의 원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봉건제도를 확립함.

7

목종(穆宗, 980~1009)

997~1009

휘는 송(誦). 경종의 맏아들. 전시과를 고치고 학문을 장려 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강조(康兆)에게 피살됨.

8

현종(顯宗, 992~1031)

1009~1031

휘는 순(詢). 천추태후의 강요로 중이 되었다가 강조의 옹립으로 즉위함.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 하였으나, 강화하여 국내가 안정되고 문화가 발전함.

9

덕종(德宗, 1016~34)

1031~1034

휘는 흠(欽). 왕 2년에 천리장성을 쌓고, 국사편찬 사업도 완성함.

10

정종(靖宗, 1018~46)

1034~1046

휘는 형(亨).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고, 장자 상속과 적서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음.

11

문종(文宗, 1019~83)

1046~1083

휘는 휘(徽). 자는 촉유(燭幽). 많은 법류을 제정하여 내치의 기초를 닦음.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함.

12

순종(順宗, 1046~1083)

1083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해에 죽음.

13

선종(宣宗, 1049~1094)

1083~1094

휘는 운(運). 문종의 둘째 아들. 동생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국 송나라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오는등 고려문화의 융성기를 이룸.

14

헌종(獻宗, 1084~1097)

1094~1095

휘는 욱(昱). 즉위하자 이자의(李資義)의 난을 평정하고, 다음해에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

15

숙종(肅宗, 1054~1105)

1095~1105

문종의 셋째아들. 조카인 헌종을 폐위 시키고 즉위함.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화폐제도를 시작, 고려의 황금시대를 이룸.

16

예종(睿宗, 1079~1122)

1105~1122

휘는 우.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는 등 학문을 크게 진흥 시켰음.

17

인종(仁宗, 1109~1146)

1122~1146

휘는 해(偕).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을 격었으나 선정을 베품.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케 함.

18

의종(毅宗, 1124~1173)

1146~1170

휘는 현(晛). 인종의 맏아들. 무신을 천대하고 문신을 우대하다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나 폐위되고, 명종3년에 경주에서 살해됨.

19

명종(明宗, 1131~1202)

1170~1197

휘는 호(皓). 의종의 동생.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쫏겨남.

20

신종(神宗, 1144~1204)

1197~1204

휘는 탁(晫). 인종의 다섯째 아들로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

21

희종(熙宗, 1181~1237)

1204~1211

휘는 영. 신종의 맏아들. 최충헌을 없애려다 오히려 쫏겨남.

22

강종(康宗, 1152~1213)

1211~1213

휘는숙(璹), 정, 오. 명종의 맏아들. 명종과 함께 쫏겨났다가 최중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오름.

23

고종(高宗, 1192~1259)

1213~1259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뒤 28년동안 항쟁 하였으나 결국 굴복함. 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조판함.

24

원종(元宗, 1219~1274)

1259~1274

휘는 정(禎). 몽고에 굴욕을 당한 뒤 즉위. 임연(林衍)의 난, 삼별초의 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음.

25

충렬왕(忠烈, 1236~1308)

1274~1308

원(元)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등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을 받았음.

26

충선왕(忠宣, 1275~1325)

1308~1313

휘는 장(璋). 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으나 7개월만에 충렬왕이 다시 복위.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 고려와 원나라의 학문교류에 힘을 씀.

27

충숙왕(忠肅, 1294~1339)

1313~30, 32-39

휘는 도(燾). 정사에 염증을 느껴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다가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함.

28

충혜왕(忠惠, 1315~1344)

1330~32, 39-44

휘는 정(禎). 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음. 원나라로 귀양을 가다 병사함.

29

충목왕(忠穆, 1337~1348)

1344~1348

휘는 흔(昕).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함. 어머니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함.

30

충정왕(忠定, 1337~1352)

1348~1351

휘는 저. 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폐위됨.

31

공민왕(恭愍, 1330~74)

1351~1374

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 (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시해 당함.

32

우왕(禑, 1364~1389)

1374~1388

공민왕의 아들.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폐위됨.

33

창왕(昌, ?)

1388~1389

이성계 등이 우왕을 내쫏은후,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만에 강화도로 쫏겨나 10세때 시해됨.

34

공양왕(恭讓, 1345~1394)

1389~1392

휘는 요.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실권을 빼앗기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폐위 당하고 고려는 멸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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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mbc.com/broad/tv/drama/sindon/sindon/1469195_126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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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양............

2008.07.28 11:48 from 분류없음
고려 목종 때 권신(權臣). 동주(洞州;瑞興) 출생. 목종 어머니 헌애왕후(獻哀王后;千秋太后) 황보씨(皇甫氏)의 외족.

일찍이 중을 사칭하고 천추궁에 드나들며 추문을 일으켜 성종이 멀리 장배(杖配)했으나 목종 즉위 후 천추태후가 소환, 합문통사사인(閤門通事舍人)에 이어 우복야(右僕射) 겸 삼사사(三司事)에 올라 권세를 휘둘렀다.

성종의 유교적 정치체제에 반발, 목종으로 하여금 네 차례나 서경행차를 하게 했으며, 그때마다 방옥(方獄)과 주진(州鎭)의 신기(神祈)에 대한 재제(齋祭)의식을 가지게 했다.

또한 출신지 서흥에 성수사(星宿寺)를, 궁성 서북에 시왕사(十王寺)를 지어 도교·불교 및 토속신앙을 내세워 유교를 배척하고자 했다.

1003년(목종 6) 태후와 사통해 아들을 낳자 이를 왕의 후사로 삼고자 대량원군 순(大良院君詢)을 숭경사(崇敬寺)에 출가시키고, 다시 삼각산 신혈사(神穴寺)로 은둔시킨 뒤 여러 차례 자객을 보내 살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또한 목종이 병이 들자 해하려 했으나 음모가 발각되어 실패, 결국 강조(康兆)의 정변으로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했다.






[한국사 간신열전]치마폭에 쌓인 간신일까? - 김치양


역사를 읽다 보면 시대와 공간을 넘어 재미있는 일치점을 발견할 때가 있다. 조금 민망스런 이야기지만 성기가 크다 하여 출세한 두 남자가 있다.

‘기화(奇貨)’란 고사성어로 유명한 춘추전국시대의 여불위가 발탁했던 노애란 인물과 고려시대 천추태후의 애인이자 정치적 수하였던 김치양이란 인물이다.
여불위가 진시황의 아버지 자초를 기이한 보물(奇貨)로 여겨 막대한 투자를 한 뒤 그를 왕위에까지 올린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사실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여불위는 임신한 자신의 첩을 자초에게 바쳤고, 그녀는 정(진시황)을 낳았다. 정(政)이 13세 되던 해 그의 ‘명목상의 친부’인 자초(장양왕)가 죽자 정(政)은 왕위에 올랐다. 그가 진시황이다. 진시황이 즉위한 이후 몇 년간 여불위는 진시황의 친모인 태후와 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위험한 일이었다. 장성해가는 진시황이 둘의 관계를 눈치채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참 정염을 불태우던 진시황의 모후는 여불위와의 밀회를 고집했다. 이때 여불위는 위험천만한 관계를 끝내고자 성적 매력이 강한 남자를 태후에게 바쳤다. 그 남자가 바로 노애였다. <사기>에도 여불위가 태후에게 바치기 위해 대음인(大陰人, 성기가 큰 남자)을 구했다고 기록돼 있다.

노애가 태후의 사랑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노애는 태후의 후원 속에 가신 1천 여명을 거느리는 장신후로 봉해졌다. 성기가 컸던 이유로 귀족의 작위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인물은 우리 한국사에도 존재한다. <고려사>에 성기가 컸다고 적시된 인물, 고려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의 애인이었던 김치양이 바로 그 사람이다.


“김치양은 동주인으로 천추태후 황보 씨의 외족이었다. 그는 성정이 간교하고 성기가 능히 수레바퀴를 꿸 수(陰能關輪) 있을 정도였다. 일찍이 머리털을 깎고 가짜 중이 되어 천추궁에 출입하면서 추악한 소문이 자자하였으므로 성종이 그것을 확인하고 곤장 쳐서 먼곳으로 귀양 보냈다.”(<고려사> 열전 반역 1 김치양 편)
수레바퀴를 꿸 수 있을 정도니 그 크기를 능히 짐작할 수 있겠다. 김치양 역시 성종이 죽고 목종이 즉위하면서 귀양에서 풀려나와 천추태후의 최측근으로서 정치적 출셋길을 걸었다.

고려의 성종과 조선의 세종, 두 임금의 공통된 고충

고려의 성종과 조선의 세종은 공통점이 많은 국왕이었다. 두 임금 모두 유교적 정치체제를 지향했다. 또한 골육상쟁의 왕위계승전에서 벗어나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과정을 거쳐 즉위했다. 두 임금의 시기에 고려와 조선은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이런 빛나는 치세를 이뤘다는 점은 행복한 공통점이었다. 그러나 두 임금은 친인척의 분방한 애정행각 때문에 꽤나 속을 끓여야 했다. 점잖은 인물들이었던 만큼 그 속 썩는 정도는 보통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세종은 두 며느리를 각각 투기와 동성애 때문에 내쳐야 했다. 성종은 이복 여동생인 헌애왕후(후일의 천추태후)와 헌정왕후 황보 씨의 애정행위 때문에 두 여동생의 파트너를 귀양보내야 하는 고충을 겪었다.


헌애왕후와 헌정왕후는 모두 태조와 신정왕후 황보 씨 소생인 대종의 딸이었다. 자매는 경종의 3비와, 4비로 출가했다. 그러나 경종이 26살의 나이로 단명하자 황 씨 자매 모두 애인을 두었다. 경종이 죽고 난 뒤 연애를 했으니 불륜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김치양은 천후태후를 배경으로 하여 벼슬아치에 대한 인사권에 강력한 영향권을 가지게 된다



헌애왕후는 김치양을 파트너로 선택했다. 동생인 헌정왕후는 태조의 아들로 그녀의 작은 아버지인 안종 욱과 관계를 가졌다.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헌정왕후 황보 씨도 대종의 딸인 바 경종이 죽자 대궐에서 나와서 왕륜사 남쪽에 있는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그가 혹령에 올라서 소변을 누었더니 소변이 흘러서 온 나라에 넘치었으며 그것이 모두 변하여 은(銀)바다로 되었다. 이 꿈을 깨고 점을 치니 ‘아들을 낳으면 왕이 되어 한 나라를 가지게 되리라’는 점괘가 나왔다. 이에 왕후가 ‘나는 이미 과부가 되었으니 어찌 아들을 낳겠는가?’ 물었다.
당시 안종의 집과 왕후의 집이 서로 가까운 까닭에 자주 왕래하다가 서로 통하여 임신이 되었다. 하지만 만삭이 되어도 감히 임신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성종 11년(992) 7월에 왕후가 안종의 집에서 자고 있을 때 그 집 종들이 화목을 뜰에 쌓고 불을 지르니 불꽃이 올라서 마치 화재가 난 듯하여 백관들이 달려와서 불을 껐다.

그때 성종도 급히 위문하러 가서 본즉 그 집 종들이 사실대로 고하였다. 그래서 안종을 귀양보냈는데 왕후는 부끄러워서 울고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자기 집 문어귀에 이르렀을 때 뱃속의 태아가 움직였다. 그래서 문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아이를 낳았으나 산모는 죽었다. 성종이 유모를 택하여 그 아이를 양육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아이가 장성한 후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현종이다.”

판박이인 문희와 헌정왕후의 꿈

재미있는 것은 헌정왕후의 태몽과 출산과정이 계통이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능화 선생이 <조선여속고>에서 밝힌 바 있듯 김유신의 동생이자 김춘추의 부인으로 문명왕후가 된 문희와 고려 태조의 조부인 작제건의 어머니 진의(辰義)의 태몽은 판에 박은 듯 똑같다. 문희와 진의 둘 다 산꼭대기에 올라 오줌을 누자 세상이 온통 오줌바다가 된 언니의 꿈을 산 것이다.


그리고 왕이 될 자식을 낳은 것도 같다. 진의의 아버지 보육의 꿈은 헌정왕후의 꿈과 똑같았다. 혹령에 올라 남쪽을 향해 오줌을 누자, 그것이 온 나라 산천에 넘치고 마침내 은바다로 변한 것이다. 뭔가 냄새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왕건의 세계(世系)는 조선조의 <용비어천가>가 이성계 가문을 신비한 가문으로 조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것으로 꾸며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왕가의 신성함을 드러내는 데 ‘오줌이 세상을 넘치게 하는’ 꿈이 동원된 것은 왕가의 상징조작 과정으로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헌정왕후의 집 종들이 뜬금없이 집뜰에 꽃나무를 쌓아두고 불을 지른 것 역시 김유신이 문희의 임신 사실을 안 후 한 행동과 동일한 것이었다. 김유신은 문희가 혼전에 임신하자 그 아버지가 김춘추란 것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그 죄를 물어 불태워 죽이겠다는 소문을 낸 뒤 집뜰에 나뭇단을 붙태워 연기를 피어올렸다. 선덕여왕이 남산에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안 김유신이 왕에게 동생을 죽일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선덕여왕이 그 사실을 알고는 김춘추에게 문희를 구할 것을 명해 김춘추는 문희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 헌정왕후의 집 종, 곧 그의 측근들 역시 집뜰에 불을 질러 그녀의 불가피한 출산을 알리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문희 때와는 달리 파트너가 작은아버지인 관계로 혼인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출산 직후 죽음을 맞았다.
어쨌든 성종으로서는 누이가 출산을 하다 죽으니 가엾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어린 현종이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무릎 위로 기어오르자 그를 가엾게 여겨 안종에게 데려가 키울 것을 명했다.

고려 천추태후 대 당 측천무후

이렇듯 인정받지 못한 사랑을 했던 두 자매였지만 언니인 천추태후는 달랐다. 그녀는 이복오빠인 성종이 죽고 아들인 목종이 즉위하자 섭정에 나섰다. 섭정과 동시에 김치양을 불러들여 합문통사사인이란 벼슬을 주었다.

이후 몇 해 안 돼 왕의 존중과 총애가 비길 바 없이 되어 벼슬이 우복야겸삼사사(정2품)란 고위직에 올랐다. 천추태후를 배경으로 하여 벼슬아치에 대한 인사권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서에 기록된 대로 ‘대물(大物)’을 가진 덕분에 실세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러나 천추태후가 김치양을 단순히 애인으로만 본 것은 아니었다. 진시황의 어머니가 노애를 성적인 파트너로만 삼았던 것과는 달랐다. 천추태후는 유교적 정치체제를 지향했던 이복오빠 성종과는 완연히 다른 정치노선을 걸었다.

천추태후는 고려의 전통적이고 복고적인 정치를 추구했다. 그래서 유교보다는 불교와 도교를 다시금 중시했고, 고려의 전통적인 토속신앙을 숭상했다. 성종 집권 시 경시되었던 서경(西京, 평양)을 중시했다. 그를 위해 목종에게 서경 행차를 권하여 태조의 북방정책을 환기시켰다. 이 같은 정치노선을 위해 천추태후는 외족인 김치양과 황보 씨 일가를 중심으로 한 친위세력을 구축했다. 이것은 곧 김치양이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구축할 수 없었던 조건이기도 했다.


<고려왕실 족내혼 연구>의 저자인 정용숙 박사는 김치양을 활용한 천추태후의 정치를 중국 당나라 때의 측천무후와 비교하기도 한다. 측천무후 역시 섭정을 하면서 당나라 정치 전반을 관장했다.
 
측천무후는 미약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신진관료층을 배양하여 반대파인 고위직 인사와 전통적 귀족층을 제거하였다. 또한 당시의 불교 숭앙 분위기를 타고 자신의 애인인 괴승 설회의를 조종하여 <대운경>이란 불경을 널리 유포했었다. 결국 독자적 세력기반을 구축한 측천무후는 새로운 제국을 세워 중국 유일의 여자황제로 즉위했다.


천추태후 역시 과거제를 확충하여 신진세력을 배양했고, 전통적인 귀족관료층을 숙청했다. 또 승려 출신인 김치양을 통해 사원을 건립하고 불교행사와 전통적인 국가 신앙을 대폭 지원했다. 이런 천추태후의 행보에 유교적 소양이 강한 관료층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이런 관료층의 불만은 차기 왕위를 둘러싼 두 세력간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목종 6년(1004)에 천추태후는 김치양과 관계해 아들을 낳았다. 천추태후는 이 아이를 목종의 뒤를 잇는 왕으로 세우고자 했다. 그러자면 자신의 동생 헌정왕후가 삼촌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낳은 대량원군(뒤의 현종)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량원군만이 왕위계승권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천추태후의 정치적 파트너

결코 용인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사랑으로 고초를 겪었던 대량원군. 불행한 성장과정에 있던 조카였지만, 천추태후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방해하는 최대의 걸림돌에 불과했다. 그녀는 대량원군을 절로 보내 중이 되게 하였다. 고려시대에 왕자들이 중이 되는 것은 잉여권력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대량원군은 왕씨 성을 가진 유일한 왕자였다. 이미 유교적 충신관을 신봉하는 관료세력은 대량원군을 다음 대의 후계자로 옹립하고자 움직이고 있었다. 천추태후는 대량원군을 제거하고자 궁녀를 보내 독이 든 술과 떡을 보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량원군은 그때마다 주변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천추태후 측과 유교적 관료그룹 간의 갈등은 결국 강조의 난을 일으킨 관료층의 승리로 끝났다. 최항, 최충순 등의 관료세력은 서북면순검사로서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강조와 손을 잡고 대량원군을 옹립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이다. 천추태후는 아들인 목종과 함께 유배당한 뒤 죽음을 맞았다.


김치양은 흔히 고려사에서 간신의 대표적 인물로 그려진다. 그것도 태후의 치마폭에 휩싸여 권세를 휘두른 역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역사의 패자에게 기록은 없다. 유교적 관료그룹의 반격에 손 한번 못 써보고 순식간에 당했을 뿐이다.
 
<고려사>에서는 김치양을 반역자의 하나로 놓지만 반역의 대상인 목종이 어머니 천추태후와 함께 유배지로 떠나야 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그리고 이 모자는 유배지로 가는 길에 군사들에게 살해당했다. 강조의 밀명이 있었다고 한다.


김치양은 고려의 독자적 국가체제와 문화를 갖추고자 했던, 야심에 찬 천추태후의 정치적 파트너였을 가능성이 크다. 야사에 기록된 것처럼 성욕에 사로잡힌 태후의 성적 노리개는 분명코 아니었을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최용범/ 역사작가 gaji15@hanmail.net

출처
http://www.economy21.co.kr/magazine/txt.asp?news_id=56275&icon=21





 


  고려시대(高麗, 918~1392, 473년간, 총 34대)

왕명

재위기간

약사

1

태조(太祖, 877~943)

918~943

이름은 왕건(王建). 신라 궁예의 부하로, 부하에게 옹립되어 송도에 도읍을 정하고 왕위에 오름. 935년 신라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함

2

혜종
(惠宗, ?~945)

943~945

휘는 무(武). 태조의 맏아들. 대광인 왕규(王規)의 음모에 신경쓰다 병사함.

3

정종(定宗, 923~949)

945~949

왕규의 난을 평정하고 불교를 숭상함. 서경(평양)에 왕성을 쌓고 천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

4

광종(光宗, 925~975)

949~975

휘는 소(昭). 자는 일화(日華). 노비 안검법을 제정하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를 실시함.

5

경종(景宗, 955~981)

975~981

휘는 주(인宙). 자는 장민(長民). 광종의 아들. 전시과를 제정함. 방탕한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

6

성종(成宗, 960~997)

981~997

휘는 치(治).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유교를 국가지도의 원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봉건제도를 확립함.

7

목종(穆宗, 980~1009)

997~1009

휘는 송(誦). 경종의 맏아들. 전시과를 고치고 학문을 장려 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강조(康兆)에게 피살됨.

8

현종(顯宗, 992~1031)

1009~1031

휘는 순(詢). 천추태후의 강요로 중이 되었다가 강조의 옹립으로 즉위함.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 하였으나, 강화하여 국내가 안정되고 문화가 발전함.

9

덕종(德宗, 1016~34)

1031~1034

휘는 흠(欽). 왕 2년에 천리장성을 쌓고, 국사편찬 사업도 완성함.

10

정종(靖宗, 1018~46)

1034~1046

휘는 형(亨).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고, 장자 상속과 적서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음.

11

문종(文宗, 1019~83)

1046~1083

휘는 휘(徽). 자는 촉유(燭幽). 많은 법류을 제정하여 내치의 기초를 닦음.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함.

12

순종(順宗, 1046~1083)

1083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해에 죽음.

13

선종(宣宗, 1049~1094)

1083~1094

휘는 운(運). 문종의 둘째 아들. 동생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국 송나라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오는등 고려문화의 융성기를 이룸.

14

헌종(獻宗, 1084~1097)

1094~1095

휘는 욱(昱). 즉위하자 이자의(李資義)의 난을 평정하고, 다음해에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

15

숙종(肅宗, 1054~1105)

1095~1105

문종의 셋째아들. 조카인 헌종을 폐위 시키고 즉위함.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화폐제도를 시작, 고려의 황금시대를 이룸.

16

예종(睿宗, 1079~1122)

1105~1122

휘는 우.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는 등 학문을 크게 진흥 시켰음.

17

인종(仁宗, 1109~1146)

1122~1146

휘는 해(偕).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을 격었으나 선정을 베품.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케 함.

18

의종(毅宗, 1124~1173)

1146~1170

휘는 현(晛). 인종의 맏아들. 무신을 천대하고 문신을 우대하다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나 폐위되고, 명종3년에 경주에서 살해됨.

19

명종(明宗, 1131~1202)

1170~1197

휘는 호(皓). 의종의 동생.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쫏겨남.

20

신종(神宗, 1144~1204)

1197~1204

휘는 탁(晫). 인종의 다섯째 아들로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

21

희종(熙宗, 1181~1237)

1204~1211

휘는 영. 신종의 맏아들. 최충헌을 없애려다 오히려 쫏겨남.

22

강종(康宗, 1152~1213)

1211~1213

휘는숙(璹), 정, 오. 명종의 맏아들. 명종과 함께 쫏겨났다가 최중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오름.

23

고종(高宗, 1192~1259)

1213~1259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뒤 28년동안 항쟁 하였으나 결국 굴복함. 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조판함.

24

원종(元宗, 1219~1274)

1259~1274

휘는 정(禎). 몽고에 굴욕을 당한 뒤 즉위. 임연(林衍)의 난, 삼별초의 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음.

25

충렬왕(忠烈, 1236~1308)

1274~1308

원(元)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등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을 받았음.

26

충선왕(忠宣, 1275~1325)

1308~1313

휘는 장(璋). 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으나 7개월만에 충렬왕이 다시 복위.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 고려와 원나라의 학문교류에 힘을 씀.

27

충숙왕(忠肅, 1294~1339)

1313~30, 32-39

휘는 도(燾). 정사에 염증을 느껴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다가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함.

28

충혜왕(忠惠, 1315~1344)

1330~32, 39-44

휘는 정(禎). 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음. 원나라로 귀양을 가다 병사함.

29

충목왕(忠穆, 1337~1348)

1344~1348

휘는 흔(昕).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함. 어머니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함.

30

충정왕(忠定, 1337~1352)

1348~1351

휘는 저. 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폐위됨.

31

공민왕(恭愍, 1330~74)

1351~1374

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 (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시해 당함.

32

우왕(禑, 1364~1389)

1374~1388

공민왕의 아들.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폐위됨.

33

창왕(昌, ?)

1388~1389

이성계 등이 우왕을 내쫏은후,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만에 강화도로 쫏겨나 10세때 시해됨.

34

공양왕(恭讓, 1345~1394)

1389~1392

휘는 요.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실권을 빼앗기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폐위 당하고 고려는 멸망함.









2008/07/28 - [분류 전체보기] - 천추태후의 아들 목종 동성애자가 되다.....................
2008/07/27 - [분류 전체보기] - 천추태후와 황보설.........
2008/07/22 - [분류 전체보기] - 공대아름이 홍인영.............
2008/07/28 - [분류 전체보기] - 김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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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영
출생
1985년
신체
키170cm
직업
모델
학력
대진대학교
데뷔
2001년 뮤직비디오 '이승환7집-잘못'
경력
2003년 m.net '가요베스트 27' VJ
수상
2005년 미스아시아선발대회 2위








'아름이' 홍인영이 KBS 2TV 새 대하사극 '천추태후'로 본격적인 연기자로 거듭날 예정이다.

모 이동통신사 CF에서 '공대 아름이'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홍인영은 '천추태후'에 출연을 결정했다. 21일 드라마 관계자에 따르면 홍인영은 제작진과 출연계약서에 도장을 찍지는 않았지만, 출연에 구두합의 된 상태로 오는 23일 첫 대본 리딩을 앞두고 있다.

홍인영은 드라마에서 여자 무사를 연기한다. 천추태후를 호위하는 무사 가운데 한 명으로, 뛰어난 무술실력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이 드라마를 위해 이미 한 달 전부터 액션스쿨을 다니는 등 첫 연기 데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5년생인 홍인영은 2000년 이승환의 '잘못' 뮤직비디오로 데뷔, 2005년 미스 아시아 대회에 2위로 입상하면서 중화권에서 '리틀 장만옥'으로 떠오른 기대주다.









[SSTV|여창용 기자] KTF SHOW CF '20살의 Show'의 히로인 공대생 아름이가 화제를 낳고 있다.

'공대생 아름이'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홍인영으로 2001년 이승환의 '잘못'뮤직비디오로 먼저 얼굴을 알리고 2003년 m.net '가요베스트 27'의 VJ로 활동했다.

2004년 장나라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은색연화'로 중국에 진출해 2005년 미스아시아 선발대회 2위를 차지했다.

이 당시에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1위보다도 2위에 오른 한국인이 더 예쁘다. 도대체 누구냐?"라며 관심이 모아진 바 있다.

최근까지 홍콩 최대 매니지먼트사 스타지와 계약을 맺고 활동한 홍인영은 2년간의 중국 활동을 접고 연기에의 꿈을 위해 한국활동을 시작했다.[스포츠서울TV의 새이름 S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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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그램명 : 천추태후
  • 극본 : 손영목 연출 : 신창석
  • 방송시간 : 2008년 10월 방영예정방송사 : KBS 2TV
  • 출연진 : 채시라, 최재성, 이덕화, 신애, 김석훈, 김호진, 양금석
  • 드라마정보 :
  • 야후컨텐츠 :
  • :
  • 드라마 소개 : 강감찬과 고려시대 최고 여걸인 천추태후가 거란과 맞서 승리를 거두는 내용을 그린 드라마


김석훈, '대왕세종' 후속 '천추태' 주연 유력 - 머니투데이:스타뉴스 [현재창]
천추태. 이 기사의 태그. 태그란, 글에 대한 간단한 분류 기능을 하는 키워드를 말합니다. ... 천추태 역에는 연기파 배우 채시라가 이미 낙점됐다. '천추태'는 '명성황후','무인시대' 등을 제작했던 신창석 PD가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삼국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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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화, '천추태' 강감찬 역 캐스팅 - 머니투데이:스타뉴스 [현재창]
천추태. 채시라. 이 기사의 태그. 태그란, 글에 대한 간단한 분류 기능을 하는 키워드를 말합니다. ... 이덕화는 이 드라마에서 '천추태' 역으로 이미 캐스팅된 채시라와 연기대결을 펼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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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장만옥' 홍인영의 귀환
배우의 길을 오래오래 걷기로 각오한 여배우 / 조현진
작성일 : 2008-01-16
 




[인터뷰365 조현진 / 사진 김우성] 2005년 10월. 홍콩의 센츄럴 컨벤션에서는 홍콩 ATV (亞洲電視)가 주관하는 <미스 아시아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회자에 의해 참가번호 5번이 무대 위로 호명되는 순간, 객석은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광동어와 영어로 뒤섞여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한 명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미스 아시아 선발대회에 대한민국의 대표로 무대의 오른 ‘홍인영’이란 이름이 아닌 ‘장만옥’이라는 외침이었다. 객석은 느닷없이 한국대표로 무대에 등장한 국적이 다르고 어려진 장만옥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그 밤에 한국에선 ‘무명’이었던 홍인영은 이 대회에서 2등을 한다. 다음 날 아침 홍콩의 모든 언론은 미스아시아가 된 중국 하얼빈 출신의 ‘키티 왕’이 아닌 ‘한국에서 온 리틀 장만옥’ 홍인영의 이름으로 도배를 한다.





“사실 굉장히 놀랐어요. 물론 저도 장만옥이란 배우를 몰랐던 건 아니고, 또 그 배우를 닮았다는 말도 한국에선 여러 번 들어 봤었지만 홍콩 사람들이 그렇게 까지 반응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었지요.”



장만옥은 분명히 홍콩이 가장 사랑하고 자랑하는 여배우이다. 그녀는 지난해 전도연이 수상한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이미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지난 2004년에 수상한 바 있다. 그 수상이 아니더라도 장만옥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 마지막 홍콩영화의 르네상스를 임청하, 종초홍과 함께 만들어낸 ‘잊을 수 없는 홍콩의 연인’ 이었던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홍콩에서 가장 큰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 중 하나인 <스타지>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어요.”



그래서 지난 2년간 홍인영은 홍콩에 있었던 것이다. 홍인영에게서 보여지는 ‘장만옥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기에 그녀에게는 주로 잡지화보와 광고를 통해 장만옥의 이미지를 카피하는 일들이 주어졌었다. 물론 그 일들은 홍인영을 홍콩에서 파파라치가 따라 붙을 정도의 ‘유명인’으로는 만들어 주긴 했었다. 그리고 홍콩에 ‘한국여성의 아름다움’도 충분히 전했다.





“하지만 뭐랄까... 늘 갈증이 있지요. 저는 장만옥이 아니라 홍인영이고, 어떤 이미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으니까요. 2년쯤 홍콩에서 지내다 보니 저 스스로에게 ‘너 지금 뭐하고 있는거니?’하는 질문이 멈추질 않더군요.”



홍인영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결심한다. 홍콩의 매니져먼트는 물론 그녀의 주변 관계자들은 모두 홍인영을 만류했다. 왜 바보같이 홍콩에서 얻고 있는 충분한 인기를 버리고 어쩌면 밑바닥부터 다시 출발해야 하는 한국으로 돌아가려느냐는 것이었다. 홍인영은 그 만류, 그 유혹을 버리고 3주전인 크리스마스에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연기자가 되는 꿈 밖에 없었어요. 그 한 가지 목표만 보고 걸어왔지요. 고등학교 다닐 때 가수 이승환씨의 7집 앨범 중에 ‘잘못’이라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데뷔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케이블 TV에서 VJ, 중국 톈진방송의 20부작 드라마 <은색연화(銀色年華)>에서 장나라씨의 언니 역으로 출연해 온 일들이 모두 반듯한 연기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었죠. 그래서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목표가 분명한데 그 길 위에서 고생을 할지언정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면 안되는 거죠. 오래오래 일할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리틀 장만옥’ 홍인영은 돌아왔다. 그리고 홍콩의 매니져들이 우려하던 대로 그녀는 한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촬영이 예정된 영화와 방송의 주연이 아닌 단, 조역의 오디션에 참가하면서 다시 연기자로써 다시 스타트라인에 서있다. 이제 24살. 그녀는 배우의 길을 오래오래 걷기위해 다시 운동화의 끈을 조여 맨다. 다른 이들의 염려가 아닌 어쩌면 그녀의 뚝심이 옳은 건지도 모른다. 아니 자신의 꿈에 길에서 고생은 할지언정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면 안 된다는 그녀가 옳았으면 좋겠다. ‘리틀 장만옥’을 버리고 ‘무명 여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한 여자, 홍인영을 만났다.


출처
http://www.interview365.com/client/news/view.asp?sidx=1187&ctcd=32











이 름 : 홍인영
생년월일 : 1985. 10. 27.
사는곳: 동작구 사당동
학 력 : 서문여중 동덕여고
신 장 : 167cm
체 중 : 47kg
혈액형: A형
가 족 : 부모님, 오빠
취 미 : 음악듣기, 노래부르기, 춤
장래희망 : 영화배우
데 뷔 : 이승환 뮤직비디오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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