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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5 신민아 여름날, 고고70...............
  2. 2008.07.15 이지연(가수).........
(서울=스포츠코리아) 15일 오후 서울 강남 압구정 CGV에서 Note your Life, XNOTE 크로스오버필름 ‘여름날’의 사사회가 열렸다. 시사회에 참석해 배우 신민아가 생각에 잠겨 있다.












 

크로스오버필름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채택한 ‘여름날’은 사랑과 우정 그리고 갈등이라는 보편적인 테마와 스토리 라인을 유지하면서 각각 3~4분가량으로 만들어진 총 7개의 에피소드에 광고, 단편영화, 드라마, 판타지, 뮤직 비디오 등의 다양한 장르가 혼합돼 있다.

‘여름날’에서 현빈 신민아 류승범은 각각 세련된 건축 설계사, 스타일리시한 영화 칼럼니스트, 유쾌한 프로그래머로 분해 마치 우리의 일상처럼 즐기고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은규/news@photoro.com)








 
[JES 김인구]


70년대 가요계의 여왕들이 스크린을 통해 속속 부활(?)하고 있다.

84년생인 신민아는 올 가을 개봉 예정 영화 '고고70'(보경사, 최호 감독)에서 70년대 인기가수 이은하의 '밤차'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밤차'는 1978년 발표된 고고와 디스코 풍의 노래다. "멀리 기적이 우네~ 나를 두고 멀리 간다네~"라는 가사와 함께 일명 '찌르기 춤'을 대유행시켰던 명곡이다.

영화 속에서 신민아는 자신의 이름을 딴 '미미와 와일드캐츠'라는 댄스 그룹을 결성해, 주인공 조승우의 그룹 '데블스'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밤차'는 그가 직접 부르는 유일한 곡이기도 하다.

신민아는 '밤차'의 재현을 위해 전지현의 프린터 CF 속 '테크노 댄스'를 안무했던 곽용근 안무가의 도움을 받았다. 힘있는 노래는 물론, 절도있게 하늘로 손가락을 찌르는 동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신민아의 변신은 때마침 개봉을 앞둔 또 하나의 '7080' 영화인 '님은 먼곳에'(이준익 감독)의 수애와 비교되면서 팬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수애는 70년대 초반 최고의 히트가수인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를 불러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극중에서 헬기를 타고 가면서 구성지게 부르는 '님은 먼곳에'는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대변하고 있다. 80년생인 수애 역시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했던 노래를 소화하기 위해 이준익 감독으로부터 특별 강의를 받는 등 시대적인 감성 재현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김인구 기자[cl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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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모델 출신 연예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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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활동 중단, 도미한 이지연 13년만에 입 열다


 
1980년대말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난 사랑을 아직 몰라’, ‘바람에 멈추어다오’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일약 청춘스타로 떠올랐던 가수 이지연(36)씨.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어느날,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행을 택했던 그가 13년 만에 당시 상황과 심경을 밝혔다.
이지연씨는 최근 여성조선 10월호와의 인터뷰에서 1990년 당시 도망치듯 미국행을 택했던 이유에 대해 “남편과 결혼을 반대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미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며 “어린 마음에 몇 달 지내다 보면 금방 해결되리라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씨의 부모님들은 10살 연상의 이혼남이었던 현재의 남편 정국진(47)씨와의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도망치듯 미국에 건너간 두 사람은 정씨의 큰형 내외만 지켜보는 가운데 1990년 10월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이씨의 부모님들도 정씨를 사위로 받아들였다. 이씨는 “결국 해결은 되었지만 부모님께 큰 죄를 지었던 것 같다, 그 후로 부모님이 많이 늙으셨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그러나 이씨의 미국행이 단지 사랑을 위한 도피만은 아니었다. 그는 “남편을 만날 즈음 바쁜 스케줄과 악성 루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다”며 “심하게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무대에 서면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연예계 생활에 회의를 느낄 때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때 ‘히파이브’의 싱어로 같은 클럽에서 일하던 남편을 알게 됐고, 남편의 따뜻함에 많이 의지하게 됐다”고 여성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여성조선은 “이씨는 현재 미국 동부 애틀랜타에서 남편과 함께 단 둘이 살고 있다”며 “남편 정씨는 은행대출을 도와주는 융자전문가로 활동하며 퓨전 스타일 스시바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남편의 헌신적인 노력과 신앙 덕분에 10년 넘게 시달렸던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10년 넘도록 나를 괴롭히던 루머들과 혼자 싸우며 힘들어 하다가 신앙을 가지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나를 괴롭히던 그런 것조차 포용할 수 있게 됐다”며 “내 신경질 받아주느라 남편이 고생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가수 복귀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씨는 “예전부터 늘 베스트 앨범에 대한 욕심은 있었다”며 “제 음반은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없고, 인터넷 음원에도 등록된 게 없어서 사실상 제 노래를 들을 기회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고 여성조선은 전했다.

최근 영화 ‘어린신부’에서 문근영이 ‘난 사랑을 아직 몰라’를 부르고, 가수 장나라가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리메이크하는 등 자신의 노래가 다시 불리는 것에 대해 이씨는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심경을 밝혔다.

이씨는 “굳이 복귀가 아니더라도 무대에는 한번쯤 다시 서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지만 이번 인터뷰가 복귀 인터뷰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당부도 전했다고 여성조선은 덧붙였다. 여성조선은 “이지연씨는 서른 여섯 중년의 주부가 됐지만 갸름한 계란형 얼굴과 긴 생머리의 미모는 예전 그대로였다”고 전했다.

인터뷰 기사 전문은 시중에 판매중인 여성조선 10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닷컴 internews@chosun.com

입력 : 2005.09.26 16:05 27'







아래는 펌글입니다.

이은하와 이지연의 선택
<아래 이야기는 허위에 근거한 날조 이야기입니다.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일종의 팬픽으로 봐주세요>


혜은이는 당대의 최고 스타였어요. 혜은이가 여성스러운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황홀해했고, 그녀의 하얀 피부에 다소곳이 박혀있는 검은 눈동자가 브라운관을 통해 쳐다보면 반하지 않을수 없었다네요.



당대 최고 가창력의 가수 이은하는 항상 혜은이를 부러워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이은하를 이야기할 때면 아름다운, 미모의 이러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경우가 드물었거든요. 둘은 반드시 비교되고, 가창력의 이은하, 미모의 혜은이로 부르면서, 아무도 이은하의 미모를 칭찬하지 않는 것이지요.

16세때 연예계에 데뷔한 이은하는 매우 바쁜 스케쥴의 연예인 생활을 했고, 한정된 인간관계 속에서 제대로 이성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고 하는군요. 당시는 남녀공학 따위는 없었고 여고를 나왔고, 또한 대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었으니 요즘 젊은이처럼 캠퍼스커플이니, 손잡고 데이트를 한다거나 한 적이 없을 것이고, 매스컴에서도 여성성으로는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은하가 첫 데뷔 녹화에는 재밋는 일화가 있습니다. 담당 PD가 이은하의 얼굴이 방송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모두 편집되었었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은하는 충격을 받습니다. 후에 최초로 이은하가 챠트 1위를 차지한 곡도, 1위를 차지하기 전까지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라디오에만 출연해서 1위로 밀어올린 것이랍니다.

1979년 혜은이는 10대가수상, 이은하는 '밤차'로 최우수가요상을 받습니다.

파워풀한 펑키로 변신해서 성공한 뒤에, 그녀는 재변신을 시도한 시기는 마침 록밴드 붐이 불고 있었고, 현철과 불나비, 처럼 백밴드를 데리고 록풍의 노래가 도입될 때였습니다. 이은하는 <이은하와 호랑이들>이라는 현철에 맞먹는 유치찬란한 이름으로 헤드밴드를 차고 호피무늬에 신곡 활동을 했습니다.


아뿔싸, 젊은 테리우스가 그녀에게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처음으로 여자로 보아주는 남자가 생겼습니다. 이은하의 백밴드 '호랑이들'의 기타리스트와 사랑에 빠진 이은하는 생애 최초로 뜨거운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연예인의 특성상 개인생활도 없었기 때문에, 둘이 따로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지도 못했다는군요. 게다가 어머니가 무척이나 깐깐하게 일정을 관리했다고 해요.

드디어 몰래한 사랑은 깊어만 가고, 도끼 썪는줄 몰랐던 모양. 결국은 어머니에게 들통이 났던 모양입니다. (겁도 없이 어머니에게 결혼시켜달라고 찾아갔던 것이었던지도 모릅니다.) 기타 청년은 이은하의 어머니 앞에서 무릎꿇고 모질게 모욕을 당하고, 이은하도 대판 혼났었나봅니다.

이은하는 어머니와 자신의 사랑 앞에서 잠시 갈등하다가, 어머니를 선택합니다.  어머니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그렇게 생애 첫사랑을 떠나 보낸 이은하는 (기타청년은 짤렸고 밴드는 해체당하고...) 한밤에 울면서...난생 처음으로 노래가사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 그냥 미안한 마음에 독백을 하다보니 가사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그 해 최고의 히트곡이 됩니다. 챠트에서 1위를 차지해 이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을 유독 많이 흘렸습니다.

그녀가 언젠가 아침 토크쇼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 이야기를 언뜻 비추면서 눈이 그윽해지더군요. 이은하는 아직도 미혼입니다.

이쯤해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을 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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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의 이지연양은 백두산이라는 헤비메탈 그룹 유현상이 전략적으로 키운 스타입니다. 마이너 성향이 강한 헤비메탈 그룹 백두산으로 안정된 수입은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제작자로 변신해 자신의 꿈을 키우려는 유현상에게, 어린 소녀 이지연이 눈에 뜨입니다. 이지연은 유현상에 의해서 스타로 만들어집니다. 그녀의 앨범은 모두 유현상의 곡으로 채워져있으며, 청순한 마스크와 편안한 목소리로 '그 이유가 내게 아픔이었네', '바람아 멈추어다오' 등을 히트시킵니다.

일설에 의하면, 백두산의 유현상은 이지연을 무척이나 철두철미하게 관리했다고 합니다. 항간에는 유현상과 이지연 사이의 염문설도 돌곤 했는데, 아마 철저한 관리 탓일테지요. 어쨋건 유현상은 이지연에게 철저하게 몰두하여, 백두산 밴드마저 등한시 합니다.

아직 어린나이의 이지연은 생각과는 다른 연예계의 이런 생활에 쉽게 지쳤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마침 몰래 기타리스트와사랑에 빠집니다. (또 기타리스트냐)

매니지먼트 입장에서 가수는 자신의 수입을 보장할 생계수단입니다. 이러한 가수가 하찮은 밴드멤버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당연히 반대하겠지요. 다행히 이지연과 록커청년은 몰래 사랑을 들키지 않고 유지합니다. 그들은 미래가 없는, 희망이 없는 사랑에 싸우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다가, 해결책을 발견합니다.

미국의 교포를 위한 미주공연 스케쥴이 잡힌 것입니다. 철저한 계획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아는 사람 한 두 사람의 연락처가 모두였겠지요. 록커청년과 이지연은 서로의 결심을 확인하는 눈빛을 교환하고, 이지연은 무대로 나가 목소리의 떨림을 감추며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마치고 무대 뒤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습니다. 한국의 톱스타 여가수가, 실종되었습니다.

이지연은 지금도 미국에서 남편과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최고의 스타에서 사랑을 쫓아 불법체류자로 평범한 삶을 선택한 그녀는,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아쉬울 때가 있나 봅니다.

두 여가수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는데, 어느 경우도 아쉬움이 남는 것 같군요.

한편, 당시 이지연씨의 도피로 큰 피해를 입었을 유현상씨는 그 후 어떻게 지낼까요? 당시 최고의 스포츠 미녀스타, 국가대표 수영선수와 깜짝결혼을 했습니다. 나이차이도 꽤 있고, 유현상을 미남축에도 끼워주기 힘들고, 음악성을 인정받은 가수도 아니었고, 잘나가는 가수도 아니었던터라 의혹의 눈길이 많았는데, 결혼 얼마 후 2세를 낳아 의혹을 풀어주었습니다. 멋집니다.

당신이라면 이은하의 선택과 이지연의 선택, 둘 중에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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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허위에 근거한 날조입니다. ;-)



출처
http://rbaht.egloos.com/118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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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백두산 모습....







예전의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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