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출신 이회창 떨어지고


mbc 기자출신 정동영 떨어지고....


이명박도 월급장이 회사원 출신이지만 .  어느정도 ceo로서의 경력이 더 알려졌으며 자수성가의 이미지가 많다.


왜 월급쟁이 출신은 떨어지는가?


한마디로 그릇이 작은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자신의 모든것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리 재고 저리 재는 월급장이 출신은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다.

조직에서 월급 받듯이 대통령한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과 노태우.. 그야말로 실패시는 교수형감이다.


이것이 월급장이 마인드로 가능하기나 한가 말이다.


그렇다고 위 두 대통령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말인즉슨 그렇다는 것이다.


월급장이 출신 최규하대통령 핫바지됐고...



이래 저래 대한민국에서 월급장이 출신은 대통령꿈을 버려야 할 것 같다는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회창은 아들들이 군대 안 간 것 플러스 김영삼의 imf로 김대중에게 물 먹었고,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정치인들의 끼리끼리 의식으로 노무현에게 또 졌고. 

정동영은 자기 집안 삼촌과의 문제등 대통령깜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고.


과연 차기대선에서 야당은 누구를 내세울까?     벌써부터 흥미롭습니다.




월급장이 출신의 고건과 세월은 변했는데 혼자만 민주화운동의 투사로 이미지가 고착되어 실패한 김근태.

국민들은 별로인데... 정치인들과 언론에서 차기주자라고 떠들어댔던 김근태와 고건....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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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도심·영등포·영동의 3핵을 잇는 지하철 2호선 건설에 착수하고, 강남으로 옮긴 고속버스터미널 일대를 아파트단지로 만든 구자춘 시장의 다음 구상은 명문 고교들의 강남 이전이었다.
 
具시장이 명문고를 강남으로 옮기기로 생각한 배경에는 3핵구상 실현과 함께 도심 교통난 완화가 있었다. 종로구와 중구에 몰려 있는 이른바 명문고에 다니는 학생들의 등하교로 인해 도심 교통 체증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서울시교육위원회 의장이면서 막강한 힘을 가진 具시장이었지만 명문고 이전을 강제로 추진할 수는 없었다. 사회지도층 인사 가운데 강북지역 명문고 출신이 많았다. 따라서 명문고 이전은 바로 이들의 추억과 향수를 송두리째 빼앗는 일이었다. 종로구 화동의 경기고를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길 때 가장 강력한 반발에 부닥쳤다.

1972년 10월 28일 문교부 장관은 경기고를 영동 제2구획정리지구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3년 동안 사업비 6억9천6백만원을 들여 3만2천여평의 대지에 근대식 시설을 갖춘 교사를 지어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일류 중·고교의 개념부터 바꾸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도 담겨 있었다. 10여일 전인 10월 17일 유신헌법 발표와 비상계엄령 선포로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기 어려운 분위기인 데다 이미 고교 평준화를 통해 명문고의 의미도 상당히 퇴색한 때라 경기고 이전은 정부의 계획대로 추진되는 듯했다.
 
그런데 정부는 재학생뿐 아니라 국내외 동문까지 합세한 강력한 반대 여론에 부닥쳤다. 결국 양측은 기존 교사를 그대로 유지해 정독도서관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경기고 이전에 합의했다. 76년 3월 경기고 이전에 뒤이어 78년 휘문고가 강남구 대치동으로 옮겨갔다. 기존 휘문고 부지는 현대그룹에서 인수했다.

具시장은 명문고의 강남 이전을 독려하기 위해 대통령 연두순시 지시라는 방법을 이용했다. '강북 각급 학교의 강남 이전'을 대통령 지시사항에 넣어달라고 청와대 측에 미리 요청해둔 것이었다.

이에 따라 78년 서울시에 대한 대통령 연두순시 지시에 '강남 이전을 희망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행정·재정적 지원을 해 가능하면 많은 학교가 이전되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강남지역 구획정리지구에 있는 서울시 체비지를 학교용지로 헐값에 불하해 줄 구실도 생겼고, 시에서 은행 융자를 알선해 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동문을 설득할 명분을 얻은 학교들이 너도나도 강남 이전 계획을 세웠다.

경기고·휘문고에 이어 80년에는 숙명여중·고가 강남구 도곡동으로, 서울고가 서초동으로 옮겨갔다. 84년에는 중동고가 일원동으로, 88년에는 경기여고가 개포동으로 이전했다.

원래 경운궁터였던 정동의 경기여고 부지는 현재 미 대사관 신축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한편 74년 서울지역에 고교 평준화와 함께 학군제가 실시됐다. 서울시내를 5개 학군으로 나누고 중학교 졸업생은 같은 학군 고교로만 진학토록 하는 제도였다.

인구 증가와 신개발지 확대 등으로 78년에는 9개 학군으로 늘어났다. 이 해는 강남지역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던 때였다. 경기고·서울고·숙명여고 등 이른바 강북 명문고가 옮겨간 강남·서초구는 8학군이었다.

정리=신혜경 전문기자
중앙일보 서울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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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베트남, 라오스, 크메르등이 연달아 공산화되어 공산화의 도미노현상이 공공연한 화제가 되었다

만약에 북한군이 다시 남침해온다면 500만 강북시민을 어떻게 도강, 피난시킬것인가가 가장 큰 골칫거리

그래서 강남개발, 강북억제정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출처
손정목 서울도시계획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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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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