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유미 이건 뭐,, 결혼도 잘하고,  사업도 잘하고,, 케이블티브이에서 엠씨도 잘하고...
완전 팔방미인이네~~

사주팔자가 타고난 모양입니다.

이 정도로 중년이 잘 풀릴지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는데.

변강쇠 영화로 봐서는 영 그랬는데~~~


거기다 몸매도 처녀때와 다름없고 , 정말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반면에

김희애는 남편이 이찬진 드림위즈사장입니다.
 
결혼 당시만 해도 이찬진이 잘 나가는 벤처기업가였지만 , 요즘은 아시다시피 드림위즈가 별로죠.










하유미, 홍콩재력가 남편 방송 최초공개 '사랑해 여보~'

중앙일보 - ‎2009. 6. 19.‎
지난 17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스토리온의 '토크&시티 3' 홍콩 특집에서 MC하유미의 '곰돌이' 남편이 깜짝 출연해 시청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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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유미 탤런트          최근 이슈 보기
  • 출생 : 1965년 07월 07일
  • 신체 : 신장-167cm
  • 학력 : 일본 오타니여자대학교 발레학과
  • 데뷔 : 영화 '변강쇠 3'(1988)
  • 수상 : SBS 연기대상 여자 미니시리즈 조연상(2007), 백상예술대상 인기상(1995)
  • 경력 : TV: 엄마가 뿔났다(2008), 내 남자의 여자(2007), 토크&시티(2007), 맨발의 청춘(2006), 사랑과 야망(2006), 장희빈(2003), 대박가족(2002), 손자병법(1998), 영화: 파라다이스 빌라(1999), 인연(1997), 용병 이반(1997), 개같은 날의 오후(1995)








사이먼 서치 - <스타웨딩>하유미 홍콩 사업가와 해피 웨딩!
하유미가 결혼을 했다. 신랑은 사업가 클라렌스 입.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무려 8년간이나 지속됐으며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 이들은 지난 9월 26일 홍콩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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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찬진 기업인          최근 이슈 보기
  • 출생 : 1965년 10월 25일
  • 가족관계 : 아내 탤런트 김희애
  • 학력 :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 수상 : 서울대 공대, 한국공학한림원 선정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2006), IR52장영실상(1996), 뉴미디어 대상 정보통신부장관상(1995), 제13회 벤처기업상 대상(과학기술처장관상)(1995), 산학연협동 최우수기업 중소기업부문상(1994)
  • 경력 : 전경련 e-비즈니스위원회 운영위원(2000), 데이콤 사외이사(2000), 드림위즈 설립, 대표이사사장(1999), 제15대 국회의원(1997), 한컴네트(現네띠앙) 설립, 대표이사사장(1997)







하유미 남편 하유미 중국인 남편 공개 - Truveo 투루비오 비디오 검색
하유미 남편 하유미 중국인 남편 공개. ... (서울=연합뉴스) 이경태 기자 = 중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한국이 된 것일까? 적어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중국인들, 왜 한국 관중에 야유할까? ...
kr.truveo.com/하유미-남편-하유미-중국인-남편-공개/id/2062991012 - 66k - 저장된 페이지 - 유사한 페이지 - 노트에 저장하기







[파란인터랙티브] 하유미, 마스크팩 런칭 1년만에 100억 돌파   2008.12.01 하유미는 지난해 11월 '하유미의 하이드로겔 마스크팩'을 홈쇼핑에 런칭했다. 연예계에서 피부 하유미, 마스크 팩 론칭 1년...한편, 하유미는 새 제품인 매직 필름 안티에이징 프로그램'을 하유미 하유미, 마스크팩 사업홈쇼핑 론칭 1년... http://blog.daum.net/bakill   주소창블로그   







하유미 뱃살빼기! 다이나믹지방파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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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하유미씨 몇살때 찍은 사진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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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인 혼인 '秘史' 전격해부  
 

재벌 연예계 커플 이혼률 높아

KBS 아나운서 노현정(27)씨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4남인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막내아들 대선(29)씨와의 결혼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6월초에 만나 불과 2개월 사이에 내린 결정이다. 연예계에는 노현정씨 외에도 재벌가로 시집간 선례가 많다.

연예계에는 미스코리아 출신자들이 많고 비출신자이더라도 양귀비 빰칠만한 미모와 교양을 겸비한 여자들이 수두룩하다. 재벌가와 미인 사이에는 함수관계가 있는 것인가. 재벌이 미인을 얻겠다는 것과 미인이 재벌가로 시집가겠다는 것은 분명 시비걸 일은 아니다.

본인의 의사이기 때문이지만 연예계 일각에서는 '얼굴에 눈 멀고' '돈에 눈 먼' 결합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행복을 만들어가는 부부도 있지만 이혼한 부부도 많기 때문에 결혼 이후에 대해서도 부정적 전망이 많다. 모두 결혼할 때는 온갖 속설들이 난무했다. 처음엔 모두 행복해 보였다.

행복을 예감하며 결혼식을 올렸지만 어느샌가 파경소식이 들려오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스콰이어그룹 회장 2세인 박민서씨와 결혼한 탤런트 황신혜도 그랬다. 처음에는 재벌가로 시집간다고 한동안 떠들썩했다. 그러나 결말은 7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두 사람은 헤어졌다.

당시 소속사 튜브엔터테인먼트는 “두 사람은 그 동안 지인들의 부러움을 살 만큼 돈독한 금실을 자랑해 왔으나, 최근 성격 차이로 많이 고민해 왔다”며 이혼사유를 밝혔다.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조카이자 신세계 오너인 이명희 회장의 아들인 정용진 부사장과 백년가약을 맺고 삼성가 며느리 대열에 합류한 고현정씨도 마찬가지다.

각종 루머가 떠돌았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팬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결혼 8년여만에 파경에 이르렀다. 고현정이 모래시계 이후 결혼을 발표하고 은퇴를 선언할 때 재벌 가문에 들어가면서 본인의 직업과 꿈을 버려야 한다는 것, 다시는 TV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대다수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인터넷의 한 네티즌은 “고현정씨는 정말 행복했을까?” “중매로 만나 쉽게 결혼하는 저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뭘까”하는 의구심에 파묻힌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휴먼컴의 홍승표 회장과 결혼했다가 3년 10개월간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탤런트 오현경도 비슷한 결혼사를 갖고 있다.

딸 양육권을 갖고 있는 오현경은 "부부간의 신뢰가 깨져 더 이상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돼 이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의 막내아들 채승석씨와 결혼해 세간의 시선을 모았던 한성주 아나운서도 결혼 5개월 만에 이혼했다.

특히 두 사람의 결혼은 채승석씨의 어머니인 장영신 회장이 직접 중매를 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장 회장은 국회의원 활동 시절 한씨 아버지인 한석봉 의원과 가까운 사이였고, 이런 친분관계가 두 사람의 혼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양쪽 집안이 명문가라는 이유로 화려한 혼인식을 올렸지만 결혼 5개월 만에 두 사람은 언제 부부였냐는 듯이 갈라섰다.두 사람은 ’화려한 부부탄생’이라는 수식어에서 ’재벌가 결혼 가운데 가장 단기간 결혼생활을 한 부부’라는 오점만 남겼다.

70년대 최고의 인기그룹 ‘펄시스터즈’의 배인순씨도 전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결혼해 20여년을 재벌가 며느리로 살았지만 결국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다. 최 전 회장은 그 이후에도 KBS 아나운서 장은영씨와 결혼해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장씨 역시 KBS열린음악회 등에서 인기를 구가했던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로서 대중의 관심을 불러 모았던 인물이다. 두 사람은 가장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커플이자 사연이 깊은 부부로 유명하다.

장씨는 최 전 동아그룹 회장과 지난 2003년 비밀리에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29살이다. 1992년 미스코리아 선으로 뽑혀 공인으로 활동한 장씨는 대학졸업 후 KBS 공채 아나운서 20기로 입사, 방송생활을 하던 중 최 전 회장(당시 동아그룹 회장)을 만났다.

'인기 MC와 팬'의 관계로 시작됐던 두 사람의 관계는 장씨가 KBS에 휴직계를 내고 미국유학을 하고 있던 중에 가까워졌다. 1998년 2월 최 전 회장이 병 치료차 미국에 갔을 때 두 사람의 만남은 사랑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만 해도 재벌총수였던 최 전 회장이 수행원이나 비서없이 갔던 여행에서 장씨는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했다. 병원 입·퇴원 수속에서부터 간호에 이르기까지 최 전 회장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장씨는 일을 처리했다.

그 후 1998년 4월 최 전 회장이 전 부인 배인순씨와 협의이혼을 했다.

그 해 5월 최 전 회장은 동아건설 몰락과 함께 총수직에서 물러나는 등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그러던 와중에 장씨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KBS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최 전 회장과 장씨는 99년이 돼서야 결혼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29살이라는 나이 차이와 재혼(최 전 회장의 경우)이라는 사실, 그리고 동아그룹의 몰락이라는 갖가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혼에 성공했다.

벤처재벌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과 결혼한 전 KBS 아나운서 황현정씨도 재벌가 대열에 합류한 케이스로 현재까지 관계가 좋은 부부로 소문이 자자하다.

두 사람은 연세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황현정씨가 영문학과 88학번이었으며 이재웅 사장은 전산학과 86학번이었다. 황현정 아나운서는 지난 93년 KBS 19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결혼전까지 KBS 1TV<9시 뉴스>를 진행했다.

명실상부 당시 최고의 여성 아나운서로 꼽혔던 황씨는 1999년 겨울 친지의 소개로 이 사장을 만난 이후 꾸준한 교재끝에 결혼에 골인했다.이재웅 사장은 국내 인터넷업계의 황제이자 N세대 우상으로 꼽혔는 벤처기업인이다.

연세대 전산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91년 입학)한 후 93년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95년 대학 동기 세 명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특히 벤처재벌임에도 불구하고, 7년된 중형 승용차를 손수 운전하고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는 등 일에 대한 집념과 소박함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의 결혼은 일반인들은 물론 방송·연예계와 벤처기업계에도 큰 화제거리였다.

2001년 KBS 아나운서 출신 황씨는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과 결혼해 '부자남편 똑똑한 아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97년 당시 한글과 컴퓨터로 유명세를 떨친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과 결혼했던 탤런트 김희애도 일반 대중층에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표적 케이스다.

황현정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전형적 주부로 유명하다.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의 차남인 최영철씨와 결혼한 KBS 아나운서 최원정씨도 재벌가에 입성했다.

남편인 최영철씨는 KBS 보도국의 기자로서 두 사람은 사내커플인 셈이다.

2004년 10월 결혼한 최윤영 아나운서도 마찬가지로 전 대우 사장 장병주씨의 아들인 장세윤씨

(외국계 증권회사 펀드매니저)와 결혼함으로써 아나운서 재벌가 며느리의 맥을 이었다.

한국이태리타올 창업자의 3남인 김종우 씨와 결혼했던 한우경 KBS 기상캐스터도 방송계에 종사하며 유력인사 집안에 시집을 간 케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한우경씨는 98년 KBS에 입사해 1999년 KBS 9시뉴스 기상캐스터와 MC 등으로 활동했다.

최근 결혼설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노현정씨는 과연 기존 선배들의 어떤 전철을 밟을 것인가. 지금은 알 수 없다. 처음엔 모두 행복예감 100% 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쉽게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스타와 재벌의 만남은 도대체 어떤 루트를 통해 이뤄지는 것인가.

크게 3가지 경로를 통해 스타는 재벌2세를 만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방법은 소개를 통해서 만나는 것인데, 이중에서도 황현정씨는 친지를 통해, 김희애는 형부(현대전자 근무)를 통해, 한성주는 남편 어머니인 이명희 회장의 직접 중매로, 한우경씨는 지인을 통해, 노현정씨는 남편의 친구를 통해 첫 만남을 만들어냈다.

특히 김희애씨의 경우는 처음에 만났을 때 김희애씨는 보는 순간 내 남자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찬진씨는 김희애 씨에 대해 절대적으로 내 여자다는 생각은 안했다고 한다.

김희애가 이찬진씨를 잘 잡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데이트 할 때 마다 김희애씨가 이찬진씨를 집까지 데려다 주곤 했다.

형부 주선으로 세번째 만남까지 가서야 바로소 서로간에 관계가 친밀해졌다.

그 다음은 직접 만나는 경우인데, 이 방법은 함께 일하면서 만난 사람은 최원정씨이다. 최원정씨의 남편 집안은 재벌가이지만 남편은 KBS 보도국의 기자였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오며가며 만남을 이어간 케이스이다.

최원정씨와 비슷한 케이스로 만난 사람은 오현경씨이다. 오씨의 남편인 홍승표씨는 MBC 드라마 '호텔리어'에서 모델로도 활동을 했었는데 오씨는 그 때 자연스럽게 만나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당시 홍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혐의로 기소돼 재판중이었기 때문에 비밀결혼을 추진했다. 다음해인 2004년 10월에는 홍씨가 두 번째 구속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홍씨는 자신이 대표로 있던 M&A회사를 통해 휴먼컴을 인수한 뒤 40억원 상당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배인순씨와 장은영씨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배인순씨는 최 전 동아그룹 회장의 두 번째, 장은영씨는 세번째 아내이다.

배인순씨의 ‘자전 소설’에 따르면 최 전 회장은 당시 톱스타들과 벌인 애정행각이 충격적이었다고 표현했다. 연예인은 J, K, L, E씨, 또다른 K, L씨.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거나 지금까지도 대중의 관심을 받았던 스타들이다.

배인순씨는 최 전 회장의 스캔들로 충격속에서 결혼생활을 보냈다고 했다.

최 전 회장이 배인순씨를 만난 것도 그렇고 장은영씨를 세번째 아내로 받아들였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뤄진 재혼이라고 볼 수 있다.

고현정씨의 경우는 오래된 영화속의 한 장면같이 특이하다. 크리스마스가 하루 지난 날 고현정씨는 모친과 함께 추위를 뚫고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보러 갔다.

고씨와 모친은 좌석표를 들고 자리를 찾아 앉으려고 하는데 낯선 미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표를 들고 앉으려는 자리가 미국인 자신 자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때 어찌할 바를 몰라 고씨와 모친이 당황하자 두 줄 뒤에 앉아 있던 사람이 도와주러 왔고 그 사람은 고씨와 모친이 앉을 자리를 찾아주고는 고맙다는 말 없이 가버렸다.

고씨와 모친은 뮤지컬이 끝나고 극장 로비로 나왔을 때 극장안에서 자리를 찾아준 그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고씨가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고씨는 그 때 답례로 점심을 사겠다고 약속한 것이 결혼으로 이어진 결정적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벌과 스타가 만나는 과정에는 우연히 만났던 고현정씨 외에는 모두 중간인맥들의 영향이 조금씩 작용했다. 스타를 쉽게 만났다가 쉽게 갈라지는 사례를 보면서 재력으로 사람을 사고 파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재벌이 미인을 얻으려 하는 심리는 미인이 재벌가로 시집가려는 심리와 일맥상통한다. 결국 내가 가진 것이 떳떳할 때 사람들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선호한다. 다시 말해 같은 심성의 사람이라면 미모까지 곁들이기를 바라는 것이 재벌의 입장이라면 어차피 결혼할 바에 생을 담보해줄만한 재력을 바라는 것이 미인의 심리이다.

이런 인지상정은 인간인 이상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다보니 뜻하지 않은 이혼도 발생하고 있다. 공인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이기에 본인의 사소한 실수도 일반 대중들에게는 핫이슈로 부각하고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백마탄 왕자라고 할만한 재벌간의 만남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신데렐라의 환상을 심어주기도 해 부러움과 시기를 동시에 받는다. 대중의 우상이자 문화권력인 스타와 자본권력인 재벌간의 만남은 결혼 외에도 사회적 파장이 크다.

연예인의 이혼률이 적어야 재벌가 결혼담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그러나 현재 연예인들의 재벌가 결혼 풍속도는 빨리 끓고 식는 냄비근성 때문에 부정적 시각이 짙다.

이처럼 스타와 재벌의 만남과 결별은 결국 상품성 있는 뉴스거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과 귀를 쉽게 자극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파경의 원인은 재벌들은 실체가 아닌 스타 이미지를 보고 매력과 사랑의 감정을 느꼈지만 생활속에서 이내 스타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준성 기자
 


출처
http://kr.blog.yahoo.com/pks13693094/1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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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순, 도금봉, 문희, 김지미 등 60~70년대를 종횡무진했던 여배우들은 어느새 '전설' 로 남아 한국 연예계에서 영원한 별로 빛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는 여배우 중 '전설' 로 남을 여배우는 과연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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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나문희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천재" 다. 나문희 스스로는 아니라고 손사래 치지만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역시 나문희는 천재야!" 라고. 나문희는 연기를 가장 연기답게 한다. 꾸밈없고 솔직하게, 진정성이 담긴 채로 거짓이 없다. 슬프면 슬픈만큼, 기쁘면 기쁜만큼 감정의 과잉이나 기복 없이 진솔하고 담백하다. 그래서 나문희의 연기를 보면 꼭 우리네 일상을 보는 듯 친근하고 익숙하다.


나문희는 표정만으로 연기를 하는 예사 배우가 아니다. 그녀는 눈과 코와 입과 몸짓으로 모두 연기한다. 철저하고 정확하게, 그러나 대단히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마치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그녀 존재의 일부인것마냥 나문희의 연기는 조금의 빈틈도, 흐트러짐도 없이 정갈하고 깔끔하며 담백하고 진솔하다. 그래서 나문희는 천재이고, 깊은 내면의 연기자이며, 눈 떨림 하나에도 전율을 줄 수 있는 진짜 배우다.


코믹과 신파에서 가장 자유로운 중견배우인 나문희는 [굿바이 솔로] 와 [거침없이 하이킥] 의 중간에서 아슬아슬하지만 신 들린듯한 줄타기를 행복하게 해 나가고 있다. 나문희가 걸어온 배우의 길이 화려하지 않지만 빛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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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자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주인공" 이다. 그녀는 전성기를 구가했던 70~80년대나, 중견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금이나 여전히 주인공이다. "주인공 아니면 안 한다." 던 김혜자의 말 속에는 배우로서 한 번도 꺾이지 않았던 자존심과 자신감이 녹아들어가 있다. 한 번도 '흐지부지' 한 캐릭터를 연기한 적 없는 그녀는 드라마 속에서 딱 김혜자만큼의 색깔과 개성으로 사람들에게 어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김혜자스러워서' 사람들은 김혜자를 사랑했다.


배우로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80~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들어 김혜자의 TV 출연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김혜자는 똑같은 캐릭터에, 똑같은 엄마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고,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딱 맞는 캐릭터' 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미덕을 발휘했다. 중견배우로서 드물게 '다작하지 않는' 김혜자의 거취는 언제나 배우로서 가져야 할 신중함과 고독이 묻어난다.


자주 만나기는 힘들지만 만나기만 하면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천상 배우로, 악녀부터 현모양처까지 모든 캐릭터를 아우르며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 김혜자는 연기를 하면서도 '연기 같지 않은' 연기로 여전히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진짜 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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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두심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엄마" 다. 오빠의 학업일을 돕는다는 핑계로 제주도에서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온 한 소녀는 이제 대한민국 대표 어머니로,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전원일기] 에서 김혜자를 끔찍이도 모시던 고두심은 세월이 지나 [목욕탕집 남자들] 에서 세 딸을 거느린 어머니가 됐고, 결국엔 [꽃 보다 아름다워] 에서 가슴에 빨간 약을 바르는 희생과 인고의 어머니가 됐다. 마치 한 여성의 성장기를 보는 것처럼 고두심은 그렇게 진짜 엄마가 됐다.


방송 3사에서 모두 연기대상을 받은 유일무이한 배우이자 [한강수 타령] 과 [꽃 보다 아름다워] 로 두 방송사에서 동시에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파란을 일으켰던 고두심의 업적은 그대로 한국에서 여배우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가 됐다. 고두심은 '배우 고두심' 이기 때문에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끝끝내 배우로 남아있었기에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것은 몇 몇 작품의 실패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고두심의 존재감이다.


고두심은 여느 여배우처럼 예쁜 외모를 무기로 사람들을 현혹하지도 않았고, 수 많은 광고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이름값을 팔지도 않았다. 고두심을 발견할 수 있었던 곳은 언제나 카메라가 돌고 수 없이 이어지는 대사들이 부딪히는 그 곳, 감독의 큐 싸인과 스태프들의 땀방울이 흥건한 '드라마 현장' 그 곳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고두심은 눈물과 땀 냄새가 진동하는 그 '삶의 현장' 속에서 여전히 삶을 드러내보이는 배우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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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해숙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열정" 이다. 그저 그런 배우가 될 뻔했다. 연기는 잘했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진 못했다. 이모, 고모로 늙어가 엄마가 되고 그렇게 세월에 휩쓸려 나갈 뻔 했다. 그러나 김해숙은 드라마 [가을동화] 로 자신의 모든 열정을 불태우며 중견배우로서 가장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만의 '길' 을 열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보인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가을동화] 에서 심금을 울리는 내면연기와 함께 김해숙은 고두심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 연기자로 사람들 앞에 당당해졌다. 언제나 캐릭터를 받아들면 "이 여자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이 여자의 젊은 시절은 어땠을까." 를 먼저 생각한다는 이 배우, 얼굴이 망가지는 건 두렵지 않아도 캐릭터가 망가지는 건 수치스럽고 두렵다는 이 배우는 예뻐 보이고 싶은 여배우 본연의 욕망을 초월해 진정한 배우로서의 '이상향' 을 발견해 냈다.


재능과 노력, 열정의 황금비율로 여배우로서는 드물게 나이 들어갈수록 절정으로 치달아가고 있는 김해숙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마 끊임없이 연기하는 배우로 살다 가는 것, 그리고 그렇게 '전설적인 여배우' 로 기억 되는 것 그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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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배종옥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자존심" 이다. [무릎팍 도사] 에서 배종옥이 털어 놓았던 것처럼 그녀는 사람들에게 깐깐하고 도도한 '자의식 있는' 여배우의 상징으로 오랜 시간 인정받았다. 데뷔 초기 독특한 목소리 탓에 연기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 목소리 자체가 배종옥의 심벌이 됐고, 따박따박 할 말 다 하면서 마치 지금이 아니면 못 할 것 같이 쏟아 붓는 듯한 폭포수 같은 까탈스러움은 배종옥의 '운명 공동체' 가 됐다.


배종옥에게는 남의 눈치를 보거나 시류에 영합하는 비겁함 대신에 여배우로서 간직해야만 하는 충만한 자의식과 자존심이 가득하다. 철저한 엘리트주의,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완전무결함은 세월이 흘러 사람들과 화해하면서 인간미까지 갖추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배종옥에게 기대하고 발견하는 것은 시간조차 침범하지 못하는 '배종옥스러움' 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배우로나 사람으로나 배종옥은 배종옥, 그 자체로 아름답고 깔끔하다.


배종옥은 [무릎팍 도사] 에서 '스타' 가 되고 싶다고 강변했지만, 배종옥은 스타 이전에 배우이며, 배우 이전에 전설이다. [꽃 보다 아름다워] 에서 엄마와 손을 마주잡고 눈물을 흘리던 억척 큰 딸은 [내 남자의 여자] 에서 처절한 치정의 극단을 보여줬고, [천하일색 박정금] 에선 여성으로서의 자의식과 인간미를 모두 포용한 진짜 배우로 성장했다. 이것이 바로 '전설적인 여배우' 로 남을 배종옥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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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채시라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불패(不敗)" 다. 채시라는 연기자로서 단 한 번도 대중과의 교감에 실패한 적 없는 불패의 배우다. 몇 번의 삐걱거림은 있었어도 그것이 채시라의 드라마 그래피를, 더 나아가 채시라의 커리어에 상처를 주지는 못했고 그 삐걱거림조차 연이은 후속타의 대 성공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은폐하는 것이 바로 채시라였다. 채시라는 배우로서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천상 배우다.


시청률 '불패' 의 배우답게 채시라는 장르를 불문하고 항상 최선의 노력으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사극이면 사극, 시대극이면 시대극, 트렌디면 트렌디, 멜로면 멜로 채시라에게 불가능한 작품이나 영역은 없었고 작품 자체의 장르적 결함자체도 채시라를 만나게 되면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면서 채시라는 성장했다. 어떤 빈틈도 허용치 않는 완전무결한 청정함을 자랑하면서.


채시라는 '사랑스러운 배우' 는 아니었으나 '멋진 배우' 였다. 채시라의 등장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채시라의 말 한마디는 사람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다.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한 순간에 폭발시켜 버리는 과잉된 감정의 자의식을 채시라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배우로서 자신의 가장 큰 장점으로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채시라의 연기에 '전율' 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채시라는 조용하고 천천히 전설적인 여배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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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희애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완벽함" 이다. 사생활과 연기를 통틀어 여배우로서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김희애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욱 멋스러워져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롤 모델' 로 성장했다. 배우로서 김희애가 제시한 것은 작품과 연기력 뿐 아니라 '김희애 스타일' 그 자체였다. 가장 우아하게, 가장 고고하게, 가장 도도하게, 그렇게 김희애는 젊어지는 대신 멋스럽게 늙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아들과 딸] 에서 뭇 여성들의 질곡의 삶을 대변했던 김희애는 [완전한 사랑] 으로 신파의 끝을 달렸고, [내 남자의 여자] 에선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40대의 불 같은 사랑' 을 표현했다. 배우 김희애는 기본적으로 정확한 발음과 계산된 연기로 무장되어 결코 '해체 불가능' 한 연기파이며, 그것이 줄곧 연극톤의 과잉으로 이어질 때에도 김희애답게 소화함으로써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덴 조금도 실패함이 없었다.


20대부터 줄곧 유지해 온 김희애만의 개성은 가볍고 유쾌하기 보다는 무겁고 진중했다. 젊은 나이에 간직했던 배우로서의 진지함은 40대로 접어든 지금에 중견 배우다운 진중함과 고독으로 발전해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세월의 흔적 속에서 더더욱 영롱한 영혼을 발견케 하는 아름다움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가벼움과 거리를 멀리 했기에 진지한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 이름, 그 이름이 바로 배우 '김희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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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진실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최진실" 이다. 최진실은 그 어떤 키워드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배우다. 90년대에는 좌중을 압도하는 스타로, 2000년대에는 '40살의 트렌디 드라마' 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전천후 연기자로 탈바꿈한 그녀는 난잡한 사생활이나 스캔들조차 '최진실' 이기에 용서받았다. 가장 최진실다운 방법으로, 가장 최진실스러운 이미지로.


최진실은 조성민과의 이혼 이 후, 과거 최진실을 상징했던 소비지향적임, 사치스러움, 현대여성의 트렌디함, 발랄하고 똑소리 나는 큐트함을 모두 외면하고 철저한 '생활형 연기자' 로 임팩트를 줬다. 그렇게 그녀는 20대의 '아이콘' 에서 40대의 '아이 엄마' 로 돌아오는 동시에 과거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했던 모든 이미지들을 전면에서 부정하고 배신하는 것으로써 과거의 영광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었다.


최진실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더 이상 없을 때 원하는 것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존 본능스러운 자기 방어적 영역을 구가했고, 그 영역 속에서 새로운 '최진실 월드' 를 창조했다. 결국 지금도 최진실은 시청자들의 변함없는 충성을 바탕으로 변함없이 최진실 월드 속에서 배우 최진실로 남아있다. 역사평론가 강준만의 말처럼 최진실은 그 어떤 클로즈업에도 이그러지지 않는 오밀조밀함과 단단함을 자랑하며 한국에서 유일무이한 '최진실 신드롬' 을 현재 진행형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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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수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당당함" 이다. [무릎팍 도사] 에서 하희라가 말했던 것처럼 김혜수에게선 범접할 수 없는 스타로서의 비범함과 배우로서의 아우라가 풍겨져 나온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김혜수의 스타일은 육감적인 몸매와 센스있는 패션만으로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오직' 김혜수이기에 완성 가능한 김혜수 스타일의 카리스마다.


김혜수는 어느 영화제, 어느 행사, 어느 자리에 있어도 당당하고 여유롭다. 짓궂은 농담을 "하하하" 웃으며 넘겨버리는 호탕함에, 등장 자체만으로 스크린을 압도해 버리는 존재감까지 김혜수는 배우와 스타로서 가져야만 하는 미덕을 한 몸에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때때로 너무 강해 청소년기의 과도한 자기 절제를 유발시키기도 했고, 20대의 배우 김혜수를 줄곧 옥죄어 버리는 초자아적 불안증을 파생시켰다 할지라도 30대에 들어선 김혜수는 그 조차도 극복해내며 자신이 이룩할 수 있는 또 다른 경지를 발견해냈다.


평상의 당당함과 비범함에도 불구하고 과거 배우로서는 머뭇거릴 때가 많았던 김혜수가 30대를 넘어서며 배우와 스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사로잡을 수 있었던데에는 김혜수만이 간직하고 있는 고민과 생각, 자기 억제의 두려움까지도 당당하게 부딪혀 깨트려버리는, 배우로서의 자신감과 존재감이 살아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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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도연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도전" 이다. 영화 [접속]으로 스크린에 데뷔 해 [밀양] 에 이르는 시간까지 전도연은 여배우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고, 어떤 연기를 해야하는지를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제시했다. 물론 쉬운 시간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전도연은 오해와 의혹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편견과 처절하게 싸워야 했고, 그 싸움의 현장 속에서 배우로서의 아름다움을 쟁취해야만 했다.


전도연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질지를 고민하기 이전에 자신을 어떻게 새롭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더욱 골몰했다. 연기에 골몰하는 과정 속에서 전도연은 청춘 스타가 누려야 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배우로서는 그 어떤 여배우보다도 '모범 답안' 에 가까운 정답을 내 놓았다. 전도연은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커버했고, 종국에는 약점조차도 장점으로 승화시키며 관객과 소통했다. 그 소통의 과정은 배우 전도연이 '여왕' 으로 성장하는 '성장기' 의 역사로 기록된다.


충무로에서 영원한 '티켓파워' 를 손에 거머 쥔 전도연은 어느새 'Only 전도연' 으로 성장했고 '칸의 여인' 으로 세계에 발을 들여놨다. 그러나 '충무로의 여제' '영화의 여왕' '칸의 여인' 등의 거창한 수식어와 관계 없이 전도연은 '전도연' 자체만으로 전설이 됐다. 마치 그녀의 영화들이 전설적인 영화들로 자리잡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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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심은하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신비" 다. 처음 TV에 등장했을 때, 심은하는 일개 신인 여배우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보여줄 것은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 것은 보여주지 않는 방식을 통해 신비스러운 '심은하' 의 존재감을 완성했다. 심은하는 절대적으로 인간 심은하가 아닌 '배우' 심은하로 관객과 소통했고 그것이 곧 심은하를 전설로 만들었다. [온에어] 의 장기준의 말처럼 심은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기 이전에 동경하게 만들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로 처음 스크린에 발을 들여 놓았던 심은하는 [미술관 옆 동물원]과 [텔미 썸씽] 으로 심은하 파워를 입증했고 [청춘의 덫] 으로 절정의 인기를 맛 봤다.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에서 그녀는 한치의 미련도 없이 연예계를 은퇴했다. 사람들의 열렬한 구애와 열광에도 불구하고 심은하는 미동 조차 하지 않고 대중 앞에서 사라지는 꼿꼿함으로 영원히 신비스러운 여배우로 남게 됐다.


때때로 심은하는 '컴백설' 과 '유세설' 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신비스러운 자태를 유지하며 여배우로서의 생을 마감하고 있다. 최고의 자리에서 스스로 '종말' 을 고했고, 그것으로 '종말' 을 '전설' 로 바꿔버린 심은하는 어쩌면 이미 현존하고 있는 진짜 전설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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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희선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스타" 다. 김희선은 불 같이 타올라 불 같이 사그라졌지만 그 뜨거움과 강렬함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집어 삼켰다. 나오는 드라마마다 시청률 30% 이상을 기록했고, 하고 다니는 악세서리는 그 다음날이면 대한민국 최고의 유행 아이콘이 됐다. 인터넷과 핸드폰이 아직 생소하던 시절, 사람들은 김희선에게 최첨단의 유행과 극단의 스타일을 캐치해 냈다.


김희선은 연기를 잘 하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 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스타였다. 김희선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김희선이 하는 잦은 실수에도 너그러이 눈을 감아주는 아량을 베풀었고, 그 어떤 여배우에게도 바치지 않았던 충성을 맹세했다. [컬러] 에서 시작한 김희선 신드롬은 [미스터 Q]와 [토마토] 로 절정에 올랐고 [안녕 내사랑] 으로 '영원한' 아이콘임을 증명했다. 그렇게 김희선은 철저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국 연예계를 자신의 이름으로 불태웠다.


지금의 김태희, 전지현이 아무리 날고 긴다한들 90년대 김희선의 '인기' 에 비할 수 있을까. 부족한 연기력조차도 사랑스럽게 만들었던 김희선이라는 이름의 배우는 추석이면 어김없이 '김희선 특집쇼' 로 전국의 30%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 모았고, 화장품 광고 하나로 화장품 매출을 3배나 올리는 '기적' 을 행한, 그런 배우였다. 가히 90년대 김희선은 '전설의 스타, 전설의 여배우' 라 할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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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암산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