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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31 통일수도 ..........
  2. 2008.07.09 파주 교하지역과 수도....................

통일수도 ..........

2008.10.31 15:01 from 분류없음
파주가 뜬다......

어쨓든 뜬다...
























[단독]“통일수도 파주 장단이 적합
‘남북 통일수도파주 장단이 최적지’.

남북의 평화통일이 이뤄지면 정치적 및 입지적 조건을 종합할 때 파주 장단지역이 수도로 가장 적합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일 통일 수도 관련, 파주파주발전위원회의 용역결과에 따르면 장단은 휴전선을 중심으로 현재의 남과 북 지역을 모두 포함하는 수도건설이 가능해 정치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또 국토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데다가 주변에 국제공항과 항만·철도·도로 등 기반시설이 구비됐고, 서울·개성 등 대도시가 인접해 도시기능 보완 및 상호 시너지 효과가 가능하다고 평가됐다.

파주발전위의 용역을 의뢰받은 ㈜삼안의 보고서는 이 밖에도 장단이 미개발지여서 지가가 저렴하고 지장물이 없으며 주변에 개성공단이 입지, 전력과 상수도 확보도 용이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파주시와 연천군, 개성시와 황해도 개풍군 등 장단지역 180㎢를 포괄, 여인이 화장을 하기 위한 자세로 단정하고 재인과 가인이 많이 난다는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의 지형을 형성하고 부지 내 장단습지를 이용하면 도시에 백로가 날아드는 환경수도의 면모가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먼저 통일수도의 입지조건으로 남북이 모두 수긍하는 위치, 현 남북의 수도인 평양과 서울 또는 충남 연기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의 중간지점을 상정했다.

또 충족조건으로 ▲국토의 중심 ▲공항·철도·도로 등 기반시설 확보 ▲배산임수형의 확장 용이 ▲통일 후 국가 균형발전 기여 등을 종합해 남쪽의 서울과 파주 교하, 북쪽의 평양과 황해도 남천, 중간(비무장지대)의 파주 장단, 강원 철원과 대진 등 8곳을 선정 평가했다.

1차 기본 평가에서는 서울이 자연조건을 제외한 국가균형발전효과 등의 대부분 항목에서 우세, 총점 86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파주 교하가 서울과 거의 대등한 85점으로 2위, 장단은 대부분 항목이 우수했으나 청정지역인 탓에 도시건설로 인한 환경영향에서 감점을 받아 82점으로 3위로 밀렸고, 평양이 4위,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가 5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방식이 2체제를 유지한다면 남과 북이 합의해 상징성을 갖춘 수도를 건설해야 하고, 이 경우 교하가 서울을 대체할 부지로 바람직하지만 서울과 너무 인접해 북측에서 서울을 복사한 것으로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 장단의 수도 후보지 지정이 바람직하다고 평가됐다.

파주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2007-10-0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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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문화유산 기행]파주, ‘통일한국 수도論’까지
입력: 2007년 05월 18일 15:16:17
 
 
 파주는 예로부터 참 매력적인 고을이었던 것 같다.

천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각광 받은 걸 보면 도읍지와 무슨 인연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광해군 4년(1612년)의 일. 술관(術官) 이의신이 한양의 왕기가 쇠하였으니 길지인 교하(파주)로 천도하자는 상소를 올렸다.

광해군은 이듬해 비밀리에 비변사에 전교를 내려 교하지역의 형세를 살피게 했다. 하지만 수포로 돌아간다. 승정원과 대신들이 ▲배후도시를 에워쌀 만한 고산준령이 없고, ▲측면으로 도시를 옹위하는 하천이 없는 습지라는 점 등을 들어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균도 1617년 김제남과 역모를 모의하면서 수도를 교하로 옮기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풍수학자인 최창조 교수까지도 통일한국의 수도로 파주 교하를 지목했을 정도이니….

그런데 만약 2000년전 백제 온조왕의 첫 정착지가 바로 이곳 파주 육계토성이라면…. 400년전 이의신이나 허균의 교하 천도론 뿌리에는 온조왕의 첫 도읍지가 혹 숨겨져 있지 않을까. 각설하고 한강변 풍납토성과 임진강변 육계토성의 입지와 규모, 형태는 놀라우리만치 유사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를 보면 풍납토성과 육계토성의 위상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풍납토성에서는 청동초두, 외래계 도·토기(가야, 왜, 중국자기, 도기편), 와전류 등이 출토되었다.
 
한성백제가 중국을 비롯하여 가야, 왜와도 문물 교류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사유구는 물론 도로시설까지 발굴되어 명실공히 왕성의 가치가 드러나 있다.

육계토성 발굴조사 결과 풍납토성에 비해 유구의 종류와, 출토유물의 종류 및 토기 기종구성이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하지만 육계토성에서도 한성백제 전기 주거지와 백제토기 성립기의 토기인 흑색마연토기 등 헤아릴 수 없는 백제초기 유구와 유구들이 나온다. 몇몇 기종은 한강유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보다 앞선 시기의 것들이다.

육계토성은 향후 조사에서 백제의 최초 정착지라는 점과, 한성백제 전성기에는 북쪽 국경지역이라는 특수성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육계토성은 한강 이북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역사의 비밀창고라는 점에서 반드시 집중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권순진|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유우익교수의 통일후 수도로 주장하는  - 예성강 하구 , 교하지역과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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