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09. 6. 6. 11:44
유시민의 주가가 급등하는 이유는

아마도

최근 노무현 측근들이 비리로 하나 둘 잡혀들어갈 때

상대적으로

유시민은 깨끗하다는 점이 아닐까요.


적어도 돈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비리가 없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니까.



부디 초심을 잃지말고 끝까지 순수한 정치인으로 남아

대한민국현대사에서 결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다음세대에게 성공한 정치인으로 ,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시길.




과연 유시민이 내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 나올 것인가도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나온다면

오세훈과 좋은 대결이 될 듯 합니다.



내년 지방선거 최대이슈가 바로

"서울시장 누가 될 것인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서울시장은 단순한 수도서울의 장이 아닙니다.


바로 대선으로 가는 지름길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걸  바로 이명박대통령이 보여주었지요.



우리도 서서히 서구의 선진민주국가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지방에서 정치력을 키워 대선에 도전한다는.




80년 서울의봄 당시의 두 주역 유시민과 심재철.

유명한 '서울역회군' 지지파 심재철과 반대의견을 개진한 유시민.

심재철은 mbc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있고.

그 때의 의견 차이만큼이나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정치인이란 방향은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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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시민 정치인          최근 이슈 보기
  • 출생 : 1959년 07월 28일
  • 출생지 : 경북 경주
  • 학력 : 독일 마인츠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학교 대학원
  • 경력 : 보건복지부 장관(2006), 제16대, 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2004), 개혁국민정당 창당(2002), 한겨레신문 독일통신원(1994), 서울대 총학생회대의원회 의장(1980)
  • 저서 :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2000), 거꾸로 읽는 세계사(2002),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2002)







유시민 주가 급등2009-06-05 19:46 한겨레신문

한겨레 각종 지지율 조사 야권후보중 1위 올라서 리틀 노무현'으로 통하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서울시장 후보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 인사'들이 재평가받고 있는 사회...





위키백과에서


유시민(柳時敏, 1959년 7월 28일 경주 - )은 대한민국의 제44대 보건복지부 장관이며 제16·17대 국회의원이다.

사회 평론가 및 문화방송100분 토론》의 사회자로 활동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였다. 2007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예비후보로 나섰으나 개혁세력의 후보 단일화를 위하여 사퇴하였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 탈당하여 무소속으로서, 지역구 대구 수성구 을에서 18대 총선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현재 대구에서 지역 경제학에 대한 학문 연구 및 대학 강의(경북대학교)를 하고 있다.


조선 선조 때의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의 13세손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에서 출생하였고, 대구에서 대구수성초등학교, 대륜중학교,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았고, 독일로 건너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생운동을 하던 1985년 일명 '서울대 학원 프락치 사건'으로 투옥되었을 때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통해 유명해졌다.



서울의 봄 당시의 유시민의 주장

"지금 이 상태에서 해산을 명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여기서 물러나면 모든 게 끝난다. 이 많은 인원이 현재 여기서 복귀한다면 신군부는 어떤 보복행위를 할지 모른다. 결단코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끝내야 한다."

  • 심재철 총학생회 회장의 의견이 지지를 받아 유시민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회군하게 된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200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절필 선언(8월)을 하고 정치에 뛰어들어 2002년 10월, 개혁국민정당 (약칭, 개혁당)의 창당을 주도했다.

2003년 3월, 보궐선거에서 승리하여 16대 국회에 진입하였다. 같은해 4월 29일 의원선서시 캐주얼 콤비에 라운드 티를 입고 등원하며 논란을 일으켰다가 이튿날 싱글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선서했다. 또한 평소 자유주의적 소신을 바탕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는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강제적 주입이기에 이를 굳이 강제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회의적 입장을 표명한 적도 있다.

국회의원이 된 2003년 당시의 이슈는 단연 '이라크파병동의안'문제였다. 유시민은 최초 표결에서는 반대표를 행사했으나 이후 적극 찬성으로 돌아서서 참여정부의 '이라크파병'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는 진보진영의 극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고 진보개혁진영의 분열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의 협력을 요청했던 당시 개혁당 집행위원 유시민은 2004년 총선에서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민주노동당 의원을 찍는 행위는 사표(死票)일 뿐이라는 논리로서 새로 창당된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호소했는데 이는 진보와 개혁진영의 양분을 더욱 심화시켰다. 반면 '지구상에서 박멸해야할'이라는 표현으로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낸바 있는 한나라당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시 한나라당과의 연대를 적극 옹호하였다.

2007년 5월 22일,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사임한 이후, 일단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할 일을 하되 향후 저술 활동도 하고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2] 7월 11일에 그의 저서이자 정책제안집인 '대한민국 개조론'을 출간했으며, 8월 20일 열린우리당 임시전당대회 직후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직에 공식 입후보(선언, 예비후보 등록은 21일)[3]하였다. 이후 친노무현 후보들의 단일화 움직임에 따라 당내 경선에서 사퇴하고 이해찬 지지를 선언하였다. 제18대 총선에서 원래의 지역구 고양을 떠나 대구 수성 을에서 출마하기 위해 예비후보자로 등록하였다. 2008년 1월 16일 이해찬 의원과 함께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였고,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겠으며 유연한 진보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18대 총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대변인이자 현 수성 을 국회의원인 주호영 의원과 사실상 보수지역인 대구에서 대결하게 되었다. 개혁 정당 창당을 목표로 18대 총선에 나섰으나, 낙선하였다. [4] 최근에 그는 이명박 정부가 법률을 통해서 헌법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5]





2006년 2월부터 2007년 5월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역임했다. 재임 중 국민연금법건강보험 개혁을 추진했으나, 국회 한나라당의 거센 반발로 인해 시행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기초노령연금법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각종 아동에 대한 투자 및 지원제도와 소외계층을 위한 '돌보미 서비스' 등을 도입하고, 사회투자정책을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의 미래전략으로 정하는 등 여러 업적을 남겼다.






유시민은 좌우의 기준으로는 온건 좌파 내지 중도이나, 그의 특징은 좌우의 이념보다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그가 조중동 등 보수언론에 대해 가했던 공격도 그들 신문이 우익적 견해를 대변해서라기보다는, 공정해야 할 언론이 편파성을 띠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선전한다는 데 대한 문제제기 성격이 더 강했다. 그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절차를 중요시하며 대한민국은 아직 그런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정치에 있어서도 어느 당파가 정권을 잡는가보다 어떤 방식으로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정치인들에게 위임되고 행사되는가에 우선적인 관심을 둔다. 개혁당 실험이나 열린우리당 안에서의 활동과 탈당 등 그의 정치활동은 정당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목적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토론에서 어느 쪽도 편을 들어서는 안되는 사회자의 경력, 각자 고유한 효용곡선을 지닌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시장을 전제로 하는 경제학이라는 전공학문, 때로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정치적 발언들(이를테면 한나라당이 정권잡는다고 나라 안망한다), 상대편 후보는 청와대로 보내고 자기는 국회로 보내달라는 선거구호와 같은 포지티브 선거운동 등은 의견의 차이를 존중하는 볼테르적 자유주의라는 일관성를 가진다.


한편 그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그릇 안에 담을 컨텐츠로서 사회적투자로서의 복지를 내세운다. 이는 운동권 대학생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자 복지에 우선순위를 두면서도 시장경제적 틀을 중요시하는 노무현 참여정부의 핵심정치인으로 변화한 그의 경력과도 일관성이 있다.


그는 평등과 국가간섭, 자립경제를 중시하는 민주노동당 등 좌파보다도 시장경제적 논리로 좌파와 우파를 함께 비판하는 폴 크루그먼의 성향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New Unn
서울역 회군'과 빼앗긴 '서울의 봄'. 80년 4월9일 성균관대 학생들의 병영집체훈련 거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학생들은 교련교육의 일환으로 열흘간 군 부대에 입소해 훈련을 받도록 돼 있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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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재철 국회의원(제16~18대)          최근 이슈 보기
  • 출생 : 1958년 01월 18일
  • 학력 :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 소속 : 한나라당
  • 경력 : 제18대 국호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위원회 위원(2008), 제18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2008), 제18대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위원(2008)









전용홀더채택으로 귀차니스트에게딱~~~!!  이런 책갈피 봤어??

posted by 공릉역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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