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09. 5. 27. 13:35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혼란을 틈타 노이즈마케팅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달리보면

우리사회의 양념같은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있어 인터넷도 재미있고 흥미있죠.

이런 사람들이 꺼리낌없이 다양한 의견을 보여주니까  우리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도 안되는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말의 공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듣는 우리가 취사선택하여 소화하면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지만원

이분은 한 때 사회의 시스템화를 주장하기로 유명하였습니다.

그 때는 좋아했었죠.

일례로  모르는 분도 있겠지만  예전에는 은행창구에서의 줄서기가 극성을 부렸었습니다.

공과금 한번 낼려면 하루의 절반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새치기도 빈발했고요.

이것을 해결한 것이 지금은 은행마다 비치하고 있는 순번표입니다.

이러한 은행에서의 새치기같은 국민들의 의식부재가 아닌 시스템이 부족한 부분을 해결하자고 주장한 분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너무 횡설수설하는 것 같습니다.




변희재야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다치고

진중권은 교수라는 어엿한 직업이 있는분이 너무 나대는 느낌입니다.

소속대학에서의 평가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강의는 열심히 하는지?


 



변희재(1974년 -)는 한국인터넷 논객이다.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1994년 입학하였고, 재학시절부터 학내에서 각종 평론활동을 하였다.

1999년 인터넷 언론인 "대자보"를 창간할 때 참여하였고, 한동안 진보적 논객으로 활약하였다. 그리하여 강준만이 주도하는 정치평론지인 《인물과 사상》에 여러 차례 기고하였다.

이후 노무현을 지지하는 논객들의 모인 인터넷 사이트인 서프라이즈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나, 노무현 집권 이후, 2003년 민주당 분당시, 반노무현 성향으로 돌아섰고, 인터넷 언론인 브레이크 뉴스를 창간하여 친 민주당 , 반 노무현 성향의 논조로 활약하였다.

이후 문화방송 및 각종 프로그램에서 문화평론을 하기도 하면서 활동영역을 넓혀왔다.

2005년 이후부터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기고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보수적 논객으로 활약하였다. 그리하여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촛불시위나, 진중권을 비롯한 여러 진보적 인물들을 비판하는 글을 보수언론을 통하여 발표하였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 작성에 참여하기도 하였다.[1]

최근에는 인터넷 언론매체인 빅뉴스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백분토론 같은 시사토론 프로그램 등에도 보수적 성향의 패널로 가끔 출연하고 있다. 그 밖에 최근 "실크로드 CEO포럼"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대표로 활동 중이며 모임 이름에서 따온 '실크세대론'을 주장한 글을 언론 매체에 기고한 바도 있다.



  • 진보에서 보수로 변신한 '꺼삐딴변' 변희재
  • 돌아선 분, 헤매는 분, 종잡을 수 없는 분
  • 변희재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안 돼… 자살은 조폭적 사고방식”


  •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B%B3%80%ED%9D%AC%EC%9E%AC





    지만원(池萬元, 1942년 11월 20일 ~ )은 대한민국군인 출신 공학자이며 군사평론가, 사회기관단체인이다. 정치 경력으로는 시스템미래당 대표로 활동하였고, 1990년부터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소장, 시스템클럽의 대표 등을 맡고 있으며, 언론활동도 하고 있다. 강원도 횡성군 출신.


    1966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22기로 졸업하고 육군소위에 임관되었으며, 미국 해군대학원(Naval Postgraduate School)에서 행정과학(Administrative Science) 석사과정(1974년~1975년)을 마치고, 경영과학(Operation Research) 박사학위(1977년~1980년)를 취득하였다.[1][2][3]

    1967년~1971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관측장교, 작전장교, 포대장 등을 역임하고, 1972년~1974년 정보본부 해외정보 모집장교, 귀국 후 1976년~1977년 국방 PPBS 도입 연구요원, 1981년~1987년 국방연구원 책임연구 위원 등을 역임했다. 1987년 육군사관학교 예비역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1] 1987년~1989년 U.S.NPS 부교수, 1998년 7월 2일부터 1999년 10월까지 서울특별시 시정개혁위원, 1998년 11월 1일부터 1999년10월 30일까지 국가안보정책연구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1]

    2007년 시스템미래당을 창당하여 대표를 역임했다. 1990년~현재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군사평론가, 시스템클럽 대표 등에 재직중이다.





    논란 거리

    [편집] 친일발언 관련

    [편집] 문근영 관련

    • 2008년 11월 1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기부천사 좌익세력의 작전인가?〉란 글을 통해 연예인 문근영씨의 외조부 류낙진의 빨치산 행적을 사회기부활동과 연관시켜 비난한 일로 구설에 올랐다. 이 와중에 진중권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자 지만원은 명예훼손으로 그를 고소하기에 이른다.[4]
    • 2009년 3월 7일, 검찰은 고소를 기각, 진중권은 7일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띄운 글을 통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1. 정보통신망 (명예훼손) --- 혐의 없음, 2. 명예훼손--- 혐의 없음, 3. 모욕--- 죄가 안 됨, 이런 내용입니다"라고 밝혀졌다.[5]

    [편집] 5.18 광주 관련







    진중권(陳重權, 1963년 ~ )은 대한민국문화평론가, 대학강사, 철학자이다. 인터넷방송 활동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비평활동 등이 잘 알려져 있으며 《미학 오디세이》등의 저서가 있다. 중앙대학교카이스트의 겸임 교수로 재직하였다. 가족사항으로는 독일 유학 시절에 만난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 1남을 두고 있다.




    1963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작곡가 진은숙, 음악평론가 진회숙의 친동생이다. 198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고, 1992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유리 로뜨만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진보적 문화운동 단체 문학예술연구회,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에서 활동하였다.

    1993년에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1994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에서 미학, 해석학, 언어철학을 공부하며 '언어 구조주의 이론'으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수료하고[1] 1999년 10월에 귀국했다. 독일 유학 과정에서 세 살 위의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1998년 4월부터 인물과 사상에 '극우 멘탈리티 연구'를 연재하였으며, 1999년부터는 김정란, 홍세화, 김규항 등과 함께 아웃사이더를 만들었다. 이후 정치사회비평지 ‘아웃사이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1]

    인터넷언론 등 다양한 매체에 사회 문제나 미학에 대한 기고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때 민주노동당의 당원이였으며, 현재는 진보신당의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2008년 대한민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해 왔으며,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시위에서 진보신당의 인터넷 생방송 '칼라TV'를 진행하고 있다. 5월 31일의 시위 도중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였다.

    2009년 현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겸임 교수(독일어를 전공한 것이 아니라 미학을전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겸임교수를하고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로 재직 중이다.[2]





    비평 활동

    [편집] 우파 지식인에 대한 비평활동

    진중권의 본격적 비평 활동은 1997년 여름부터 시작된다. 그는 당시 《인간의 길》의 저자 이인화가 편집위원으로 있었던 문예지 《상상》에 서양미술에 나타난 악마주의에 관한 글을 청탁받았다. 그는 이 청탁이 "서태지 음반을 거꾸로 돌리면 악마의 메시지가 나온다고 미신 퍼뜨리던 광신도들"을 비판하는 글로 생각했지만, 실제 책에서는 박정희를 찬양하는 글 사이에 그의 글이 포함되었다. 이에 진중권은 반론을 요청했지만 이인화에 의해 거절되고, 대신 《문학동네》에 반론을 싣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조선일보 비판 부분은 삭제된 채 출판되었다.

    이후 진중권은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 지식인들에 대한 비평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다. 이러한 활동의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1998년에 발표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였다. 여기서 진중권은 조갑제 등 우파 지식인들을 '극우파'로 정의하고 그들을 신랄하게 공격하였으며,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언론권력과 박정희, 전두환 등의 정치 파시즘을 비판해 왔다.[3]

    [편집] 2000년대 이후 활동

    그 후, 대한민국의 군사문화와 획일주의 문화 그리고 황우석 사태디워 논란, 미국산 쇠고기 협상 논란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문화현상 및 사회현상에서 비판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8년 3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양촌리 김회장 댁 둘째 아들”이라며 특유의 화법으로 비판하였다. 배우 유인촌을 긍정적으로 묘사해온 이 말은 졸지에 장관 유인촌을 비꼬는 말로 변했다. [4]

    2008년 6월 단박인터뷰에 나와 촛불시위에 동참해 비평활동을 벌였다. [5]

    [편집] 영화 디 워 비평

    이 부분의 본문은 디 워입니다.

    그는 2007년 8월 9일 MBC <100분토론>은 ‘디 워, 과연 한국영화의 희망인가’라는 주제로 방송할 당시청년필름 대표 김조광수, 스포츠조선 김천홍 기자, 문화평론가 하재근 등과 함께 패널로 출연했다. 이때 디 워의 작품성을 놓고 '기본 플롯과 스토리에 문제가 많고, 애국주의-시장주의-CG-인생극장 등의 코드만 있지, 영화에 대한 철학이나 내용은 없었다', '마치 황우석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모험이다', '비평할 가치가 없는 영화인데 댓글 때문에 꼭지가 돈다, 엉망진창이다, 개판이다' 며 비판하였다.[1][6].[7] 한편 네티즌들은 '진중권 교수가 평론가고 지식인이면 한사람의 열정이 담긴 영화를 그렇게까지 비판해야하는가', '진 교수는 시장주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괜한 불구덩이에 뛰어든 것 아닌가란 오해가 든다' 등 그의 발언 대한 비판 여론을 가하였다. 또 다른 누리꾼들은 '긍정이 있으면 비판도 있는 법이다. 평론가는 어느 한 쪽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비평을 가하는 것', '솔직히 <디 워>가 볼 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희망’으로까지 불리기에는 민망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며 반론을 제시하기도 했다.[1]

    진중권의 디워 비판에 반발하는 네티즌들의 격렬한 반발에 봉착하였다. 진중권은 '디 워’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려면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정상인가' 하며 문제를 제기[8]하였으나 황우석 사태 당시의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라는 분석과 지식인의 오만이 더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8]


    진중권 "아들을 저 지경으로 만든 지만원 씨 집안…"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B%B3%80%ED%9D%AC%EC%9E%AC





    조갑제에 대하여는 아래 더보기를 클릭하세요.


     






    전용홀더채택으로 귀차니스트에게딱~~~!!  이런 책갈피 봤어??

    posted by 공릉역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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