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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종목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중간에 도태되는 선수들은 많다.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주요인은 아마도 우쭐병이 아닐까.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대학때 등등  야구 쫌 한다고 우쭐대다가 연습 열심히 안하고 여자 만나고 괜히 어께에 힘 넣고 다니면서 뻐기고.

그러다 어느새 운동능력이 감퇴되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운동능력도 중요하지만 성격도 좋아야 스타선수가 되는것 같다.

말썽많이 피우는 롯데의 정수근을 보면 더욱 그래 보이고.


또 하나 선배들의 구타가 싫어서 재능있는 야구선수들이 커가는 도중에 많이 그만두는 것 같다.

자기 때문이 아니라 뭐같은 선배 잘못 만나 자신의 일생이 바뀌는 셈인데

정말 안타까운 경우다.



하나의 스타선수가 태어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이름없는 선수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심지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선수도 있다고 하니 , 씁쓸하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펌글들입니다.



불운한 야구천재는 많죠... 기억나는대로 말씀드리자면,,,



1. 안희봉

    90년 봉황기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을우승시켰죠,, 당시 포수가 두산의 강인권선수고

  상대팀은 성남고의 강병규투수였죠...

  안희봉선수는 190이넘는키에 타자로서도 4번타자를 치면서 초고교급선수였죠

 연세대로 진학하면서 투수보다는 타자를 많이 쳤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죠..

 그러나 프로로 안오고 당시 현대피닉스에 갔다가 다시 현대로 왔지만 제대로

 활약을 못하고 2군을 전전하다가 은퇴했네요.. 정말 아쉬원 선수입니다.

 고교시설 위재영, 문동환과 함께 고교빅3였는데 지금은 뭐하는지...

 

2. 곽재성

   고교시설 차명주와 함께 좌,우 쌍투마차로 고교무대를 평정했죠..

   한미일고교야구에서 투수 박찬호, 타자 곽재성의 활약은 대단했읍니다.

   고교 졸업후 롯데는 체구가 작은 차명주보다 185가 넘는 곽재성을 선호했고

   롯데에 입단했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2군을 전전하다 역시 은퇴했죠..

 

3. 손경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고교시설 임선동,조성민과 함께 고교(서울)빅3였죠..

  당시 LG와OB의 스카우트는 그야말로 전쟁이었읍니다.

  기량면에서는 임선동과 조성민이 다소 앞서서 1차지명을 점찍어 놨으나 조성민이

  대학가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프로로 오겠다는 손경수를 OB가 지명했으나

  손경수역시 홍익대로 진학했고 중도에 중퇴하고 OB에 다시 입단했으나 여러사건들로

  인하여 은퇴했죠... 정말 아쉬운 선수예요...

 

이외에도 경희대와 국가대표 에이스로 명성을 떨치다 대학때 부상당해 연습생으로

 LG에 입단했으나 끝내 은퇴한 김도완,

건국대에이스로 당시 인하대의 권명철과결승에서 붙어 완승하면서 2차1번으로

지명되었던 김민국,

차명주와 곽재성이 빠져나간 경남상고의 에이스였던 김건덕,

현대가 돈을주면서 전학시키고 1차지명했던 박기범,

190이넘는키로 위력적인 공을 뿌렸던 경남고의 서정민도 있네요..

 

어느정도 활약했지만 아쉬웠던 선수로는 두산의 마무리였던 김경원, 94년 태평양

 준우승을 이끌었던 김홍집, 지금은 한화에서 뛰고 있는 지연규, 롯데의 김수화,

현대로간 이정호, 한화의 조규수, SK의송은범, 강혁 글쓰도 보니 정말 많네요....

 

출처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0&dir_id=100814&eid=hDsMp1mBfd1HmVX/yqQ4gCiiCNlsMs1q&qb=vt+xuLyxvPYgseiw5r/4&enc=euc-kr&pid=fPj4%2Fwoi5T8sscKBgg8sss--278878&sid=SeZ0W1Vn5kkAAHi3JM4



프로야구 제도를 바꾼 선수들 


이제 2009년도 신인을 가르는 1, 2차 신인드래프트는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현행 지명제도를 보면 가끔씩 이해가 가지 않는 규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전학생 및 유급생은 왜 1차지명자격이 주어지지 않는건지, 해외진출선수들에게는 왜 복귀후 2년의 족쇄와 같은 기간이 있는지.

 

어찌 생각해보면 자유경쟁 및 본인진로의 자유를 구속하게 되는 악법(?)들이 현재 즐비하게 엮어져 있는데 이런 룰들은 알고보면 프로야구 질서확립을 위해서 피치못하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때에 따라서 선수 및 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지명관련 룰들이 어떤 이유로 생겨난 것인지 다음에 열거하는 선수들의 사연을 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1. 최창양 (마산고-중앙대중퇴-필라델피아-삼성, 2000년은퇴) --- 해외진출선수의 복귀규정 

마산고를 나와 중앙대에 입학했던 최창양은 고교시절부터 상당히 가능성을 인정받던 투수로 대학졸업후 연고팀인 롯데의 1차지명을 받을 가능성도 있던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대학 3학년말 이 선수는 미국, 필라델피아와 계약을 하면서 해외로 진출하게 됩니다.

물론 그 전해에 동기인 박찬호가 LA다저스에 입단하면서 해외진출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평범한 유망주중 한명인 최창양이 과연 박찬호와 같이 메이저에 진출할 정도의 대어였냐 하는 의구심이 생기게 되죠.

과연 그는 미국에서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하고 1년만에, 그러니까 한국에 있었다면 대학을 졸업할 시기였던 96년에 미국구단에서 트레이드되어오는 형식으로 삼성에 입단합니다. 해외구단과 개별접촉에 의한 트레이드였고 별도의 정해진 규정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렇게되니 삼성이 처음부터 타구단 연고지의 선수를 얻기위해 미국진출부터 복귀까지 배후조종을 했다는 의심을 받게되고 설령 그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러한 방법을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지명절차없이 원하는 타지역 선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후 해외진출선수도 국내에 복귀할때는 지명절차를 밟아야만 하는 것으로 규정화가 되어버리고 이 제도는 해외진출선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세분화된 규약으로 확대가 됩니다.

 

 

2. 임선동 (휘문고-연세대-LG-현대, 2007년은퇴) --- 지명권 ≠ 소유권 

이 선수는 최창양, 그리고 뒤에 나오는 선수들처럼 딱히 제도를 바꾸게 된 계기가 된 선수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선수에게 내려진 판결과는 반대의 경우로 제도가 굳어지게 되죠.

많이 알려졌다시피 임선동은 고교졸업시 LG의 1차지명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92년도였죠.

그이후 LG의 입단제의를 뿌리치고 연세대에 진학해게 되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1차지명은 평생 따라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졸업후 임선동이 LG로 입단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박찬호와 최창양 등의 영향으로 임선동이 졸업할 무렵에 해외진출 러쉬가 일어나게 됩니다.

92학번의 최고투수였던 임선동 또한 당연히 해외진출을 모색하게 되고 일본의 다이에 호크스와 계약을 맺는데 성공합니다.

여기서 그의 졸업을 기다리고 있었던 LG트윈스가 딴지를 걸게 되죠.

LG는 4년전에 지명을 했던 선수이기 때문에 이 선수의 입단권리는 자기팀에 있다고 하면서 그의 해외진출을 저지하는 소송을 하게 되고, 처음으로 이러한 상황을 접해야하는 법원은 고심끝에 다이에와의 계약을 무효라고 인정합니다.

물론 임선동의 해외진출은 막았지만 LG에게 완전한 승소를 준것도 아닌 것이 2년간만 LG에서 선수생활을 한뒤에 다른팀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기상천외한 판결을 내린 것이죠.

그이후에 임선동판결과는 반대로 지명권은 해외진출시 권한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굳어지면서 비록 임선동은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이후부터 국내구단의 지명을 받은 선수들도 얼마든지 해외진출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유권해석이 내려지게 됩니다.

 

 

3. 백차승 (부산고-시애틀-샌디에고(現)) --- 무분별한 해외진출의 제도적 보완장치 

박찬호의 메이저 성공이후, 그리고 임선동이 일본진출에 실패했지만 국내구단 지명권이 별 소용이 없게된 이후 90년대 한국야구의 유망주들은 우후죽순처럼 해외로 진출합니다. 그러자 어떤 제도적 장치를 해서라도 그렇게 무분별하게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했던 야구계는 98년말 백차승의 미국진출을 계기로 그 발판을 만들게 됩니다.

일단 백차승은 다른 선수와는 달리 청소년대표시절 감독과의 트러블로 한국야구계에서 무기한 제명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는 해외진출에 미운털이 박히게 되죠.

백차승이 징계상태임에도 그 영향력이 미치지않는 시애틀에 입단하자 야구계는 이후부터, 그러니까 99년이후부터 해외에 진출하는 선수는 국내복귀시 어느팀에도 속하지 못한채로 2년의 무적기간을 보내야만 하는 규정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니까 백차승 이전에 해외로 간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봉중근 등은 지명을 받아놓았건 그렇지 않던간에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었지만, 백차승이후로 진출하게되는 송승준, 채태인, 류제국 등에게는 이 규정이 적용되면서 국내복귀시 2년(상무나 다른 아마팀에 속해도 안됩니다.)의 무적상태를 보내야 했죠.

다행히 2007년에 일시적으로 이 규정이 풀리면서 최희섭, 송승준을 비롯 (추첨에서 떨어진)한화를 제외 7개구단에서 지명한 한명씩의 선수가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국내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지만, 이 2년규정은 아직도 살아있는 상태로 최근에 건너간 정영일, 남윤희, 이번에 계약한 이학주, 안태경 등도 모두 이것을 적용받아야만 합니다.

 

 

4. 박기범 (동산고-현대, 2004년은퇴) --- 전학생 1차지명 금지

 이 선수는 좀 생소한 이름이죠.

박기범은 배명고에 재학중이던 유망주 투수였는데 고3을 앞두고 느닷없이 인천에 있는 동산고로 전학을 가게됩니다.

한창 금력을 휘둘렀던 현대가 자기 연고지내에 유망주가 별로 없자 다른 연고지의 선수를 지명하기 위해서 자기 연고지내의 학교로 옮기게 한 것입니다.

박기범은 결국 현대의 99년도 고졸우선지명을 받으면서 입단하게 되지만 이 박기범 사건이후 타지에서 전학해온 선수는 절대로 1차지명을 할 수 없도록 못을 박게 한 계기가 됩니다.

현재는 이 제도가 조금 확대되어 중학 3학년 이후에 타지에서 전학을 온 선수는 무조건 1차지명자격을 주지않고 있습니다.

 

 

5. 마일영 (대전고-현대-우리(現)) --- 지명권 트레이드 금지 

현대, 그리고 지금은 히어로즈의 선수인 마일영은 대전고 졸업 당시인 2000년에 원래 쌍방울의 1순위지명을 받았던 선수입니다.

마일영 이전에는 지명권 트레이드라는게 상당히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선수간 트레이드이긴 하되 현역선수를 받고 그 댓가로 이듬해 지명하는 몇번째 선수를 양도하겠다, 뭐 이런 케이스로 활용을 많이 했습니다.

조용호, 정영규, 라형진, 허문회 등이 사실은 지명을 받고도 사전약속에 의해 다른 팀으로 입단을 했던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마일영의 케이스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당시 쌍방울이 재정적으로 압박을 받던 때여서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돈많은 구단에게 지명권장사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일영이후에 이러한 지명권 트레이드는 금지되었고 그것이 더욱 확대되어 고교선수는 입단후 1년간은 트레이드가 금지되는 규정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6. 백정현 (대구상원고-삼성(現)) --- 유급생 1차지명 금지 

전학은 일찍부터 규정화를 했지만 유급에 대한 것은 딱히 정해놓은 것이 없었는데 2006년 이선수와 얽힌 사건이 일어나면서 전학과 함께 명문화됩니다.

원래 2006년에 졸업할 예정인 이 선수를, 연고구단인 삼성은 이듬해 딱히 1차지명을 할만한 선수가 없자 (이듬해 1차지명을 약속하는 댓가로)유급을 권하게 됩니다.

이 선수가 유급한다는 소식과 함께 지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알려진 2006년 지명장에서, 다른구단들은 이러한 편법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항의했고 결국 이내 곧바로 유급생 역시 1차지명자격이 없는 것으로 바로 규정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백정현이 다른 점은 위에 선수들은 본인들은 적용을 받지 않고 그 이후에 적용이 되었지만 백정현은 2007년 드래프트에 다시 나와야 했기 때문에 결국 이 규정에 적용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백정현은 부상으로 유급한 기간에 단한번도 고교시합에 나서지 못했고 그럼에도 삼성은 (1차에는 뽑지못했지만) 2차지명 1순번으로 이 선수를 지명하는 의리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pcrang01?Redirect=Log&logNo=140054880796




2001년에 졸업하는 부산 두명의 간판투수는 모두 현재 타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부산고의 에이스 추신수와 경남고의 에이스 이대호가 그들이죠...
 

글의 주제와는 상관없이 자꾸 이대형관련 댓글이 달려서 그만 하려고 했는데, 이대형은 부상만 없었다면 투수로서 프로지명도 받을 수 있었을 만큼 괜찮은 투수였습니다. 유급한 동안 1년후배들인 김대우, 고우석 같은 선수들이 같은 고3이 되면서 설령 부상이 나았어도 굳이 투수를 할 필요는 없었겠죠. 

 

출처
http://blog.naver.com/pcrang01?Redirect=Log&logNo=140054880796




박찬호 선수에 대해

 

검색하다가(누가 공주고 4번타자 했다해서;;)<<이것도 맞는지 궁궁하네요..

 

하이튼,

 

박정혁 선수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박정혁은 박찬호한테 한경기에 3번 홈런을 쳤더군요.

 

그리고 휘문고 4번 박정혁은

 

정민철한테 준결승에서 9회 결승 홈런도 뽑고..

 

정말 대단한 선수 였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건

 

대학시절 선배한테 맞고 허리 부상때매 선수생활접고;

 

또 2000년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는군요ㅠㅠ

 

강혁 선수도

 

집안 사정때매 2중계약 한거라는데...(무척 효자라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안타까운 야구 천재들이 또 누가 있나요??

출처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0&dir_id=100814&eid=hDsMp1mBfd1HmVX/yqQ4gCiiCNlsMs1q&qb=vt+xuLyxvPYgseiw5r/4&enc=euc-kr&pid=fPj4%2Fwoi5T8sscKBgg8sss--278878&sid=SeZ0W1Vn5kkAAHi3JM4





예전에 해태 타이거즈에 김상진이라는 투수가 있었습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요....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포수 임수혁 선수도 경기도중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얼마전 재기에 성공한 한화이글즈의 조성민 선수도 불운한 야구천재라고 볼 수 있죠.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우리나라 야구 역사상 가장 불운한 천재는 최동원코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투수랭킹 3위안에 들어 갈 실력을 가지고도 해외진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선수협 창설을 도모하다가 은퇴를 하게 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야구계를 떠나 잠시 야인생활을 하기도 했는데요.....이제는 다시 야구계로 돌아와 코칭스테프로 활약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더군요.

출처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0&dir_id=100814&eid=hDsMp1mBfd1HmVX/yqQ4gCiiCNlsMs1q&qb=vt+xuLyxvPYgseiw5r/4&enc=euc-kr&pid=fPj4%2Fwoi5T8sscKBgg8sss--278878&sid=SeZ0W1Vn5kkAAHi3JM4



저는 한화 팬이기에 한화출신 선수들 밖에 모릅니다 이해를...


10년정도 지났을 겁니다.

 

한화에는 이민호라는 3루수가 있었죠.

 

당시 전반기에 홈런 선두를 질주 하고 그랬었는데

 

장타력을 겸비한 내야수,

 

버거병이라는 병에 걸려 트레이드 되고 결국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무슨 병에 걸렸다는 소리만 듣고 자세한건 몰랐는데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병이라더군요;

 

그리고 그 시기에 한화에는 박지상이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국가대표 줄신이고 신인시절 3할을 넘는 타격을 쳤었습니다.

 

부드러원 스윙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던 선수였어요.

 

그런데 룸메이트였던 정영규선수의 심한 도박때문에 문제가 생겨

 

팀에서 쫒겨나게 되었답니다.

 

그후에 군대를 갔다온후 이팀저팀 테스트 신청을 하였는데 실패하였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가장 불운했던 야구선수는 임수혁 선수겠구요.

 

누구나 다아는...

 

그리고 음, 기아에 이대진 투수도 불운하다고 해야하나요

 

아마 시절대부터 투수와 타자로 기대를 받았고

 

프로에 와서도 투수로 이름을 날리다가

 

부상으로 인하여 투수를 접고 오래 ㄴ재활기간끝에 타자로 전향하여

 

다시 프로무대에 서나 싶더니 다시 부상...

 

그리고 다시 투수로 복귀했는데 실패했죠..

출처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0&dir_id=100814&eid=hDsMp1mBfd1HmVX/yqQ4gCiiCNlsMs1q&qb=vt+xuLyxvPYgseiw5r/4&enc=euc-kr&pid=fPj4%2Fwoi5T8sscKBgg8sss--278878&sid=SeZ0W1Vn5kkAAHi3J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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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암산 2009.06.12 1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때

    문학구장이 아닌 도원구장에서 할때...

    그& #46468; 당시 동산고에는 조승현,강귀태 인천고에는 김수경이 유명 했다...

    제물포고랑 시합때는 신경쓰지도 않았고 인천고랑 시합일때는 김수경이 나온다면

    게임하기도 전에 졌다고 했을정도의 김수경...

    내가 동산고 출신이라 그런지 야구부들 사이에 조승현은 "쳤다하면 홈런이다" 이런소리가 있었다...

    물론 동산고야구부 사이에서 그렇겠지만...

    내가 3학년일때 입학한 정상호...그리고 우리가 졸업하면 큰 재물(?)이 입학하다던 송은범...

    그때 당시 현대팬인 나로써 그 3명이 현대에 입단한게 너무 좋아했다..

    딴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2학년때 정규수업시간이 끝난 쉬는 시간에 해태타이거즈버스가 학교 정문으로 들어왔다...

    울 학교 운동장에서 몸풀고 도원구장에 갈려고 했나보다..

    난 거기서 이종범...종범신을 봤다...모든 애들이 종범신한테 달려갔다...

    그때 종범신은 우리들한테 미소를 보여 주셨다... 난 그때의 미소를 잊을수가 없다...

    아마 그 다음해인가 다다음해인가 일본에 갔을꺼다...

    재작년부터 가끔 이종범보고서 욕하면서 은퇴해라... 이런 글을 보면 SK팬인 나로써는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못한다고 해도 선수한테는 욕하지 말았으면...그 당사자는 오죽하겠습니까...ㅜㅜ

    아버지가 전남 함평이고,어머니가 경북 울진 사람이고 서울에서 살다가 인천에서 살고 있다...

    집안이 기아를 응원하고 나 혼자 SK응원한다...



    가끔 게시판에 오면 나도 모르게 욕이 써진다...안써야지 하면서도...

    친가가 전라도,외가가 경상도,내 고향은 서울,사는곳은 인천...

    제발 지역감정 드러내지 않았스면 좋겠다...

    그리고 다 같이 야구를 좋아하는 팬으로써 서로간의 욕은 삼가했으면 하는...

    인터넷상으로 욕하고 싸우는 상대가 결국에는 자기 지인들 몇몇통해서 가면

    다 아는 분들 일겁니다...



    저보다 나이 많으신분들도 있는데

    글에다가 반말로 써서 죄송합니다...

    야구문화가 많이 쇠퇴해가는것 같아서 .... 야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아쉽군요...

    -출처-
    다음스포츠게시판

  2. 불암산 2013.08.26 1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전고 출신의 안희봉,,그리고 지금은 해설하는 이효봉,, 둘 다 대전고 출신,,,, 유망주로 큰 기대를 받았지만,,, 이후 별 볼 일 없는 선수로 전락,, 그리고 은퇴,, 이름도 비슷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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